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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Now] 성당 점거하고 검은 속옷 내건 폴란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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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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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점거한 여성들

현지시간 25일, 일요일을 맞아 미사가 진행되고 있던 폴란드 서부 도시 '포즈난'의 한 성당.

갑자기 수십명의 여성들이 몰려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합니다.

미사는 중단됐고 출동한 경찰이 이들을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북부 슈체치네크에 있는 한 성당에서도, 남부 카토비체의 성당에서도 젊은 여성들의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들은 성당 앞에 모여 "이제 전쟁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고, 경찰은 대치 과정에서 최루가스를 뿌렸습니다.

일부 성당에는 "여성들의 지옥"이란 낙서가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왜 성당에 분노를 터뜨린 걸까요.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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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허용하라

중부 루치에 있는 한 성당에서는 정치와 종교 분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한 시위 참가자는 가톨릭 교회가 폴란드 정부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도 바르샤바에서는 성당 앞에서 극우 민족주의 단체가 맞불 시위를 벌이다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반가톨릭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건 젊은 여성들입니다.

이들의 구호는 "낙태를 허용하라"였습니다.

'기형아 낙태 위헌'‥폴란드 항의 시위

이처럼 폴란드 전역에서 여성들의 분노가 치솟게 된 건 최근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 때문입니다.

지난 22일,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기형인 태아에 대해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장애를 가진 태아를 선별해 낙태하는 것은 나치의 우생학과 다를 게 없고 건강을 기준으로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생명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위헌 판결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헌법재판소 판사 13명 가운데 2명만 소수 의견을 내며 이번 판결에 반대의 뜻을 표시했습니다.
MBC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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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낙태 전면 금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는 이미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낙태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1993년 낙태 관련 법을 만들었습니다.

성폭행과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임신부에게 건강 문제가 있을 경우, 태아에게 장애가 있을 경우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주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번 헌재 판결에 따라 성폭행과 근친상간에 따른 임신, 임산부의 건강 문제의 경우에만 낙태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폴란드에서 시행된 합법적 임신중절 수술은 1천건을 조금 넘었는데 98%가 태아가 기형인 경우였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보면 기형 태아의 낙태 금지는 사실상 전면 금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기형아 낙태'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이에 분노한 시위대가 며칠째 전국 곳곳에서 집회를 이어갔고, 시위가 격화하면서 가톨릭 국가의 성역인 성당이 점거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겁니다.
MBC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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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국가의 성당 점거는 사상 초유의 일

외신들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 시위대가 성당에 진입해 구호를 외치고 미사를 방해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AP통신은 사회주의 체제에 맞섰던 가톨릭 교회가 우익 정권을 지지하는 모습으로 돌아서면서 권위가 추락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폴란드의 주교들과 가톨릭 단체는 집권당인 '법과 정의당'에 낙태규제를 강화할 것을 계속 요구해 왔습니다.

작년 말, 우파 민족주의적 성향의 집권 여당 '법과 정의당'과 일부 극우 의원들은 이 문제를 법원에서 결정해달라고 심리를 신청했습니다.

집권 여당이 지명한 재판관이 대부분인 헌법재판소는 결국 '기형 태아 낙태'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여성인권단체들이 헌법재판소가 극렬 우파인 집권당 편을 들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게 된겁니다.

코로나19 때문에 10명 이상 모임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헌재 앞에 모여든 시위대는 "판사복이 피로 물들었다", "부끄럽다"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법과 정의당' 당사까지 행진했습니다.

유럽인권위원회도 헌재 판결이 내려진 날을 두고 "여성 인권의 슬픈 날"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 때문에 해마다 8만명에서 12만명의 폴란드 여성이 해외에서 낙태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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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걸린 검은 속옷

폴란드 제2의 도시 크라코우의 한 공원.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검정 속옷들이 줄지어 걸려 있습니다.

빨랫감처럼 보이지만 '낙태 허용'을 외치는 시위대를 응원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입니다.

검은 옷 시위는 지난 2016년에도 등장했습니다.

당시 집권했던 '법과 정의당'이 예외없이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대하는 수많은 여성이 검은색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고 이들은 '검은 시위대'로 불렸습니다.

전국 도시에서 수만 명의 여성이 참여한 검은 시위대는 학교와 직장을 비우고, 집안일을 거부하고 일종의 '파업'을 벌입니다.

폴란드 전역을 가득 채운 검은 물결로 법안 통과는 결국 좌절됐습니다.

사실 폴란드는 1989년 전까지는 낙태가 자유로운 나라였습니다.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톨릭 교회의 입김이 세졌고, 1993년 현재 시행되고 있는 낙태금지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여성인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라고 정부에 촉구했지만 가톨릭 교회와 극우 정당들은 낙태를 아예 금지하거나 더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갈등이 지속되자, 집권 여당인 '법과 정의당'은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갔고 기형아 낙태 금지라는 판결이 나오게 된 겁니다.

여성인권단체들은 앞으로도 가두시위와 전국 단위 집회를 열겠다고 밝혀 폴란드 헌법재판소의 낙태 판결을 놓고 당분간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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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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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기자(kcw@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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