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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나였어도 일본산 안먹어"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뿔난 日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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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현 바로 위 미야기현 "해양방출 반대"

"10년 노력 물거품...정말 괜찮다면 마셔봐라"

멍게 생산 70% 한국行...지금은 판로 다 끊겨

“원래 원자력발전소에서 트리튬이 섞인 물을 바다에 버린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나요? 우리만 처음 알게 된 건지, 아니면 다들 그런 것인지. 불안하기도 하고 진짜인 건지 싶기도 합니다”

지난 22일 미야기(宮城)현 어업협동조합의 데라사와 하루히코(寺沢春彦) 조합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해양 방출하는 오염수는 인체에 해가 없는 수준”이라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설명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난감해했다. 평생 바다에서 생업해온 그는 “모든 원전이 트리튬 오염수를 배출한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듯했다.

중앙일보

테라사와 하루히코(寺?春彦) 미야기현 어업협동조합 이사장이 지난 2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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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한 방침이 알려지면서 가장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건 어민들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내·외에 깔린 ‘방사능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후쿠시마현 바로 위에 있는 미야기현은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지역이다.



“'처리수'라고 부르면 달라지나. 마셔도 괜찮다면 진짜 마셔보라”



데라사와 조합장은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부른다고 해서 국민 입장에서 보면 안심하고 수산물을 먹을 수 있겠냐”면서 “오염수 해양 방출은 절대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2022년 여름에 현재 보관 중인 오염수 탱크 용량이 다 차기 때문에 2년 전에는 처리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는 도쿄전력 측의 설명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기 방출 방안도 검토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기술적으로 지혜를 모아서 다른 방법도 찾아봐 달라”면서 “해양 방출로 방향을 정해놓고 일을 진행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도 드러냈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정부가 은폐하거나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 설명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오염수를 마셔도 괜찮다면 (정부에서) 진짜로 마셔보라”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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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5시 미야기현 오나가와항에서 꽁치잡이 배가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JTBC 박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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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5시. 미야기현에서 4번째로 큰 규모의 오나가와(女川)항(2018년 어획량 1만 4777t)에선 꽁치잡이 배의 하역작업이 한창이었다. 올해는 수온이 상승하고 외국 어선들도 늘면서 꽁치잡이의 어황이 예년만 못하다.

여기에 오염수 방출 결정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어민들은 술렁였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선 약 170km 떨어진 곳이지만, 미야기현은 후쿠시마현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풍평피해(風評被害:잘못된 소문 등으로 인한 피해 )’를 우려했다.

꽁치 어선을 지켜보고 있던 한 어민은 “사람들이 방사능이라고 하면 싫어하는 게 당연하고,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워하지 않냐”고 말했다. 한 판매업자는 “해양 방출이 시작되면 겨우 늘려놓은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 뻔하다”면서 “해양 방출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후쿠시마현 바로 위...사고 전엔 멍게 70%가 한국 行



멍게 양식업자인 아베 쓰기오(阿部次夫)씨는 2013년 한국 정부가 내린 후쿠시마 등 8개현의 수산물 수입금지 결정의 최대 피해자다.

동일본대지진 이전엔 생산한 멍게를 100% 한국으로 수출했던 그는 현재는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에서 주는 피해보상금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나였어도 일본산을 수입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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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현에서 멍게 양식업을 하고 있는 아베 쓰기오씨가 지난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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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 이전엔 미야기현에서 생산된 멍게의 70%가 한국인의 밥상에 올랐다. 멍게를 실은 활어차가 매일 오나가와에서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下関)까지 1400km를 달렸다. 시모노세키에서 부산항까진 훼리로 운반하고, 다시 부산항에서 서울 등으로 활어차가 싱싱한 멍게를 배달했다.

5년쯤 지나면 수입 금지가 풀릴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멍게 양식을 시작했지만 ‘방사능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정치적 이유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2016년과 2017년엔 미야기현에서 생산된 멍게 1만 3000t 가운데 7600t을, 1만 2000t 가운데 6900t을 각각 소각해 폐기 처분했다.

아베씨는 그래도 한국 정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원인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 정부의 오염수 문제 대응의 안이함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올림픽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 문제 해결을 서둘러야 한국 사람들도 안심하고 먹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힘없는 곳에 오염수 처리하나...올림픽 말고 오염수부터 해결해야"



그는 “가장 저렴하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장 힘없는 곳에 오염수를 처리하는 것 아니냐”면서 “돈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다른 방법도 찾아봐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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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5시 미야기현 오나가와항에서 꽁치잡이 배가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JTBC 박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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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산청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2015년 4월 이후 수산물에서 기준치(100베크렐/kg) 이상의 세슘이 검출된 사례는 단 1건(2019년 1~3월)이다. 일본 정부는 샘플 조사 방식으로 수산물의 방사성 물질 검사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이르면 27일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해양 방출 방침을 정식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거센 국내 반발에 부딪혀 결정을 유보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올 4~7월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처리와 관련한 국민 의견을 접수한 결과, 총 4011건의 접수 의견 가운데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2700건에 달했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1400건이 접수됐다. 일본 어업단체도 오염수의 해양 방출이 어업인과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며 “절대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미야기현 오나가와=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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