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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할때도 “이러다 망한다” 끊임없는 혁신 이끈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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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 타계]‘초일류 삼성’ 이끈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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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기 용인시 기흥의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찾아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이 회장은 D램과 낸드플래시를 각각 1992년, 2002년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려놓았다. 삼성전자 제공


1982년 삼성전자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삼남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고 싶다”며 청와대를 찾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비웃던 상황에서 청와대에서조차 “삼성이 대체 왜 이러느냐”는 반응이 적지 않아 설득하러 간 것이었다고 한다.

이 회장 부자가 대통령 보고에 들어가자 관료들이 동행한 삼성 임원들에게 따져 물었다. “진짜 가능성이 있어요?”

임원들의 답은 이랬다. “저희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이러다 우리 회사 망하는 거 아닌가 몰라요.”

당시 일화를 전한 삼성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도, 삼성 임직원들도, 국내외 경쟁사도 삼성 오너들이 이상해졌다고 봤다”며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1970년대부터 반도체 산업의 전망을 내다봤고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사업 진출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74년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집적회로 정도로 낮은 수준의 반도체를 만들던 한국반도체가 어렵다는 말을 들은 이건희 회장은 사재를 털어 인수에 나서기도 했다. 수년 동안 적자를 냈고, ‘삼남이 고집을 부린다’는 말도 돌았지만 이 회장에게는 반도체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었다. 삼성은 현재 명실상부한 세계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다.

○ 1등 할 때도 “이러다 망한다”며 위기의식 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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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열린 ‘애니콜 화형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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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1987년 12월 삼성 회장 자리에 올라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질 때까지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확고한 비전이 있었고, 삼성이 그 비전에 못 미칠 때에는 가차 없이 질타했다. 대표적인 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한국 기업에 ‘질 경영’이란 화두를 던진 1993년 6월 신경영 선언이다.

당시는 삼성이 반도체 진출 10년 만에 D램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실적이 눈부시게 빛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회장은 “다 바꿔라”고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 전체가 사그라질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1997년 펴낸 에세이에 적었다. 그는 “불고기를 3인분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식가인 내가 식욕이 떨어져서 하루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였다. 그해(1992년)에 체중이 10kg 이상 줄었다”고도 했다.

이 회장의 눈에는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삼성 제품이 ‘싸구려’ 취급을 받는 것이 보였다. 3저 호황으로 인한 실적 파티가 끝나면 삼성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시달렸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그해 8월 초까지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 일본 도쿄로 이동하며 주요 사장단과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1800여 명을 대상으로 ‘신경영’ 특강을 이어갔다.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 시간은 350시간, 이를 풀어 쓰면 A4용지 8500장에 이른다.

그해 8월 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품질경영은 경영의 기본인데 왜 지금 강조하는지”라는 질문을 받았다.

“국가로 보나 삼성그룹으로 보나 보통의 위기가 아닙니다.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과 같은 비참한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곳이 삼성인데 삼성은 분명히 이류입니다. 3만 명이 만든 물건을 6000명이 하루에 2만 번씩 고치고 다니는 이런 비효율, 낭비적 집단은 지구상에 없어요. 이걸 못 고친다면 구멍가게도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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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신년사에도 “시간이 없다”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불량률이 줄지 않자 이 회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애니콜 화형식’을 열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100% 양품만 만들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고 직원들은 ‘품질은 자존심’이라고 쓴 띠를 둘렀다. 운동장에는 휴대전화, 무선전화기, 팩스 불량품 15만 대, 약 500억 원어치의 제품이 쌓여 있었다. 직원들은 이 제품들을 망치로 부수고 기름을 뿌려 불태웠다. 이를 지켜보던 임직원 2000여 명 중에는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조직 구석구석까지 ‘변해야 한다’는 의식이 퍼진 순간이었다. 직원들 눈빛이 달라진 삼성은 17년 후인 2012년 마침내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TV, 반도체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게 된 2005년 이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제2의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다. 그는 “애니콜(당시 휴대전화 브랜드)을 뺀 나머지 삼성 제품의 디자인은 ‘1.5류’다. 이제부턴 품질이 아니라 디자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삼성 브랜드가 프리미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순간이 이 회장의 ‘디자인 혁명’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이 회장의 마지막 신년사의 핵심 메시지도 ‘위기의식’이었다. 2013년 삼성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음에도 1800명 임원들 앞에서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신경영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다”며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리자.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내자”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한국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도 종종 드러냈다. 특히 한국이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다양한 자료를 비서실에 요청했다고 한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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