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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삼성에서 일했으면 노후걱정 없어야" 떠난 사람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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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 적고 사색 즐기던 소년
日서 보낸 유년기 책·영화에 빠져
호암 권유로 해외 돌며 경영수업
냉철함 속에 숨은 인간미
낙후동네 보며 "어린이집 만들라"
오해 살까 동문모임 피한 고뇌도


파이낸셜뉴스

이건희 삼성 회장(오른쪽)이 지난 1980년 삼성그룹 본관에서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와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냉철한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소탈하고 따뜻한, 때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인간적인 면모도 남달랐다는 평가다.

말수가 적고 사색을 즐기던 소년은 경영수업을 받은 뒤 약 27년간 회사를 진두지휘하며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사색 즐기던 소년 초일류 기업 키워

이 회장은 지난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고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3남 5녀 중 일곱째였다.

그는 출생 후 어린 시절 부친의 고향인 의령에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다녔던 이 회장은 5학년이던 지난 1953년에 "선진국을 보고 배우라"는 호암의 권유로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3년 동안 이 회장은 책과 영화에 빠져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말수가 적고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말을 하기 시작하면 쉽게 반박을 하기가 어려운 수준의 지식과 논리를 쏟아내 동기생들을 당황스럽게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단편적이거나 일시적인 말을 하기보다는 깊이 생각한 뒤 쏟아내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89년 월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 유년 시절에 대해 "나면서부터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돼서 성격이 내성적이 됐고, 친구도 없고, 술도 못 먹으니 혼자 있게 됐고, 그러니까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생각을 해도 아주 깊이 하게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3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친 이 회장은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외국으로 나가라'는 호암의 지시에 일본 와세다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7년 홍라희 여사와 만나 결혼했다.

이 회장이 삼성 경영 일선에 뛰어든 것은 1966년이다. 이 회장은 그해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고,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간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하며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호텔신라 뒤편 낙후 동네에 어린이집

이 회장은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탈하고 따뜻하면서도 때로는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나 웃게 만들었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그는 1987년 취임 직후 외부 인사들과 호텔신라에서 오찬을 하던 중 창밖을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비서진에 "저기다 어린이집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당시 호텔신라 뒤쪽에는 낙후된 집들이 밀집해 있었다. 이 회장은 "저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근무를 하려면 아이들을 편안하게 맡겨야 할 텐데, 좋은 시설에 맡길 수는 없을 것 아닌가"라면서 "그런 걸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후 이 회장은 1990년 1월 '1호 어린이집' 개관 소식을 전해 받은 뒤 "진작에 하라니까 말이야"라며 크게 기뻐했다.

이 회장은 회사를 떠난 참모들을 끝까지 챙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비서진에 회사를 떠난 참모들의 안부를 물어볼 것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회장은 "삼성에서 30년 한평생을 일했으면 노후 걱정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노후에 적어도 경제적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사대부고 동기동창이자 이 회장보다 1년 늦게 삼성에 입사한 박영구 전 삼성코닝 사장은 이 회장의 '인간적 고뇌'를 소개했다. 이 회장은 입사 초기 사내 고교모임에 참여했지만 어느 날 연락도 없이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박 전 사장은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편하고 좋다고 동문들을 따로 만나면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면서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그 말을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자동차 마니아이기도 했다. 자동차 구조에 대해서도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스포츠카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때로는 엉뚱하고 기발한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애견인'으로 유명한 이 회장은 재임 시절 한 임원을 불러 "사장들 가운데 보신탕을 먹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뒤 명단을 적어 오라고 했다. 이에 당황한 임원이 "혼내실 것이냐"고 물으니 "개를 한 마리씩 사주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 회장은 가끔 에버랜드를 들렀는데, 그때 알아본 관람객들이 달려들면 격의 없이 반겨 오히려 수행한 참모들이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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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k@fnnews.com 최종근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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