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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독일 현지서 ‘신경영 선언’ [이건희 회장 별세]

글자크기

잊지 못할 명언·명장면

美서 싸구려 취급받는 현실 보고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에 식은땀”

세탁기 불량 대충 넘어가자 충격

1993년 “지금 안변하면 잘해야 2류”

2003년엔 “위기의식 재무장”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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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22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삼성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의 이건희 회장 모습. 연합뉴스


‘초일류’ 삼성의 역사는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꿈을 현실로 바꿔온 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회장은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은 직후부터 2014년 병마에 쓰러지기 직전까지 부단히 삼성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었다.

이 회장을 잘 아는 이들은 그가 한국 대표 기업의 총수였지만, 편안히 잠을 이룬 날이 많지 않았을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과 위기감을 느꼈다고 전한다. 이 회장이 임직원들 앞에서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표현을 종종 쓴 배경이다.

특히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이 회장은 과거의 체질과 제도, 관행에서 벗어난 철저한 혁신을 몸소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이 한국의 국민 기업을 넘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이후에도 그의 노력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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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삼성’을 향한 이 회장의 여정은 1987년 12월 1일 회장 취임식에서 큰 그림이 공개됐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삼성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이 회장의 당시 진단이었다. 이때까지 삼성이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이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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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신경영 선언하는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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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트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삼성 제공


이 회장의 위기의식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에서 또 한 번 표출됐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 이를 본 이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그해 6월 이 회장은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 자신이 일본 기업 교세라에서 스카우트한 후쿠다 다미오 삼성전자 디자인고문과 마주 앉았다. 후쿠다 고문은 삼성의 문제점을 샅샅이 보고했다. 삼성은 국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일찍 퇴근하고, 삼성 직원은 외국인 고문 얘기는 무슨 수를 쓰든지 듣지 않으려 한다는 등 비판 내용이 가득했다. ‘세탁기 사건’은 이때 터졌다. 삼성사내방송 SBC가 제작한 일종의 사내 품질고발 영상물에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거리낌 없이 덮개를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왔다.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에 이 회장은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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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이때 나왔다. 이 회장은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주문했다. 이러한 주문은 여전히 회자될 정도로 국민 뇌리에 깊이 박혔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직전의 위기상황에서도 이 회장의 혜안은 빛났다. 이 회장의 질책과 함께 삼성은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삼성은 외환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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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4년 8월 15일 아테네 아노리오시아홀에서 열린 아테네 올림픽 유도 시상식에 박수치는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2003년 신경영 10주년을 맞은 이 회장은 그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재무장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우리는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고 임직원을 격려했다. 2014년 마지막 신년사에서도 이 회장의 도전과 혁신에 대한 갈망은 계속된다. 이때 이 회장은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고 말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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