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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정치권에도 거침없는 쓴소리···DJ에 IT진흥 정책 제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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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정부 시절 '정치 4류' 발언으로 홍역

DJ와 수차례 독대...대북협력 논의도

MB때는 사면 후 평창올림픽 유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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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의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

25일 숙환으로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촌철살인 같은 발언으로 우리 정치권에 족적을 남겼다. 한국 정치와 경제 상황에 대한 고인의 냉철한 지적이 역대 대통령들의 심기를 건드려 삼성과 정권 사이에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고언이 결국 우리의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T) 정책 강화로 이어지는 등 재계 맏형으로서의 한국 정치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질 때까지 전두환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6명의 대통령을 마주했다. 역대 대통령들 모두 재계의 대표로서 이 회장을 각별히 예우했으나, 정권의 이해 관계에 따라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 이 회장은 “정치인은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정치권과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정치권을 한바탕 뒤흔든 이 회장의 ‘정치 4류’ 발언은 김영삼(YS) 정부 시절에 나왔다. 1995년 4월 베이징을 방문 중이던 이 회장은 작심한 듯 “정부는 행정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정권 들어서고 나서도 크게 완화된 게 없다. 자동차 허가도 부산시민이 반발하니까 내준 것뿐”이라고도 말했다.

이 회장의 직설적인 발언을 보고 받은 YS의 반응이 간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와 삼성 역시 발칵 뒤집혔다. 이 회장은 닷새 뒤 귀국하면서 “베이징 발언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으나 이후 삼성과 YS 정부와의 관계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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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정부 시절 이 회장은 DJ와 수차례 독대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DJ는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빅딜, 대북 경제 협력 문제 등도 이 회장과 상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숙원인 자동차 사업이 DJ 정부의 재벌 구조조정 과정에서 좌절되기는 했으나 ‘실용’을 중시했던 DJ와 이 회장은 비교적 호흡이 잘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특히 DJ의 과학기술과 IT 진흥 정책에 여러 가지 영감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국정원장(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해 이희호 여사 빈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IT로 20~30년 먹고살건 있지만, 이후에 국민이 먹고살 게 없다. 그러니까 (이건희 회장이) 정부에서 개발에 박차를 가해달라고 해서 과학기술 부분과 정보통신부를 강화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회장과 여러 번 만났다. 재벌 총수들과 함께 회동을 갖기도 했고, 독대를 하기도 했다. 특히 참여정부 때에는 삼성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고, 이 회장 처남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 대사로 발탁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선배인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의 막후에서 참여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에 의해 피의자로 지목돼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2009년 이 회장을 특별 사면했다. 이 회장은 국민들에게 진 ‘사면의 빚’을 전 세계를 발로 뛰며 갚았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연거푸 실패한 후 국민적 염원이 된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2009년부터 1년 반 동안 모두 11차례, 170일 동안 해외 출장을 다니며 유치 활동에 주력했다.

다만 MB 정부 때에도 정치권을 향한 이 회장의 쓴소리는 이어졌다. 2011년 3월, 이 회장은 MB 정부 총리 출신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한 것과 관련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MB 정부 경제 성적표에 대해서도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는 “듣기 거북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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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방미 때 이 회장과 동행했으나 이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교류가 이어지지 못했다.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 회장과는 개인적인 인연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이 회장과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 순방이나 재계 총수 회동 등을 통해 짧게라도 이 회장과 인연을 맺었으나, 2017년 5월 문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이미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병실에 있었다. 문 대통령은 다만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하는 등 취임 이후 활발히 교류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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