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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슈 미술의 세계

그는 물방울에서 궁극의 평온을 보았다...김창열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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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서 'The Path' 23일 개막

미술계 "생전 마지막 전시될까" 걱정

문자와 물방울 만남 집중 재조명

"삶의 무상성 현대적 해석"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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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회귀' 연작, 1987, Oil on canvas, 195 x 330cm.[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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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 위에 한지, 먹과 아크릴, 130.3x162.2cm. 초록 바탕에 천자문의 첫 두 구절인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이라 쓰여 있다.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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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 전시장.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작품 30여 점이 그득 걸렸지만, 작가는 자신의 전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는 그의 작업실에서 신작이 단 한 점도 나오지 않았고, 최근 그의 가족은 작업실이 있던 그의 서울 평창동 자택을 종로구립 미술관으로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미술계 인사들은 이번 전시를 두고 "혹 그의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물방울 화가' 김창열(91) 화백의 개인전 '더 패스(The Path)'가 23일 개막했다. 그동안의 긴 침묵 때문일까. 길, 여정이란 뜻의 전시 제목이 여느 때보다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는 김 화백이 갤러리현대에서 여는 열 네 번째 전시.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김창열 개인전을 처음 개최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13회의 전시를 열어온 갤러리현대는 "김창열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물방울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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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Le Figaro, 1975, 신문에 수채, 53.5x42cm.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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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도 작가의 존재감을 또렷하게 대변하는 것은 각 캔버스에 맺힌 맑고 투명한 물방울이다. 그러나 다 같은 물방울이 아니다. 신문지 위부터 시작해 캔버스, 그리고 한지 위에 자리한 물방울이 모두 다르다. 대형 화면에 단 한 방울이 그려진 게 있는가 하면 크고 작은 여러 물방울이 함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재료도 다양하다. 작가는 바탕칠하지 않은 거친 마대나 모래와 나무판 등을 사용하며, 여기에 수채 물감부터, 아크릴과 오일 등으로 물방울을 그려 넣었다.

이번 전시는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에 방점을 찍었다. 이를테면 1층 전시장에서 소개한 1975년 작 '휘가로지'는 김창열의 물방울이 문자와 처음 만난 기념비 같은 작품이다. 작가는 세 명의 무장 강도가 은행을 털었다는 기사와 처칠의 전시회 풍자만화가 실린 프랑스 신문 1면 위에 수채 물감으로 투명한 물방울을 그려 넣었다. 한자의 획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이미지와 물방울이 만난 1987년 작 '회귀(Recurrence)' 연작도 단연 눈길을 끈다. 캔버스에 스며든 듯한 획의 이미지와 물방울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1972년 시작한 물방울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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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갤러리 개인전 'The Path'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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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화백은 2000년대 이후 화면에 다채로운 색을 도입했다.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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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화백은 1929년 12월 24일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6세에 월남했다. 이쾌대(1913~1965)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고, 검정고시로 1948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7년 한국의 앵포르멜(작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 미술운동을 이끌던 그는 미국에서 4년간 판화 공부를 하고 1969년 파리에 정착했다.

물방울의 발견은 우연이었다. 1972년 파리에서 작업할 당시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유화 색채를 떼어내고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물을 뿌려놨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그해 파리에서 열린 전시 '살롱 드 메'에서 물방울 회화를 처음 선보였고, 2009년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온 이후 지난해까지 물방울 그림에 반평생을 바쳤다.



문자 주변에 물방울, '회귀'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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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회귀' 연작, 1989, 캔버스에 얹은 한지, 먹과 아크릴, 193.9x130.3cm.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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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의 '회귀' 연작부터 그는 캔버스에 천자문을 쓰거나 그리고 문자 주변에 물방울을 정교하게 배치해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배운 글자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천자문이었다. 일찍이 평론가들은 물방울과 천자문의 만남이 그의 작품세계에 깊이를 더한 기폭제가 되었다고 보았다. 천자문 자체가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담고 있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글자라는 기억의 장치가 물방울이라는 곧 사라져버릴 형상과의 미묘한 만남"이라 했고, 작고한 이일 평론가는 "문자와 이미지의 대비를 넘어 동양적 원천에로의 회귀"라고 평했다.

이번 전시엔 초록 바탕에 천자문의 첫 두 구절인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이라 쓴 '회귀' 연작도 눈에 띈다. 그는 천자문을 쓰면서 한지와 먹 등 동양화 재료를 적극적으로 썼다. 농담을 다르게 쓴 글자를 겹겹이 교차시키며 쌓은 문자로 화면을 뒤덮기도 했고,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처럼 물감을 뿌리고 그 위에 라텍스로 만든 한자를 붙였다 떼어내며 입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단정한 글씨가 한쪽에 빼곡하게 자리한 대형 화면에 단 한 방울의 물방울이 마주하고 있는 1991년 작 '회귀'는 독특한 균형감 면에서 압권이라 할 만다.



마지막에 우리는 모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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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에 먹과 유채, 197 x 333.3cm.[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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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의 작품을 보며 누구나 묻게 되는 것은 맑고 투명한 물방울의 의미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은 "동아시아 철학과 예술에서는 변화하는 세계의 무상성을 나타내기 위해 일찍이 바람, 구름, 물(이슬) 등에 주목했다"며 "김창열은 동아시아 철학과 예술에서 나타나는 무상성을 상징하는 유수(流水)를 물방울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보았다.

일본 미술평론가 주니치 쇼다는 "김창열의 회화를 단순한 리얼리즘 회화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며 "스쳐 가는 시간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방울의 온갖 모습이 여기 담겨 있다. 요컨대 그것은 시간의 회화"라고 말했다. 이어 "물방울 회화에서 화가의 의도는 다름 아닌 화면의 구성에 담겨 있다. 얄궂을 정도로 정묘한 구성, 시적인 공간의 아름다움과 질서가 화면을 지배한다. 여기에는 동양의 전통적인 공간 감각이 살아 있다"고 보았다.

1988년 도쿄 전시 당시 작가 스스로 물방울에 대해 밝힌 대목도 있다.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모든 사물을 투명하고 텅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용해하는 행동"이라며 "나는 나의 자아를 무화시키기 위해 이런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빛을 머금고 있는 투병한 물방울, 그 안엔 오래 전 작가를 전율하게 했던 충일감과 텅 빈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 치열한 과정이 모두 담겨 있는 셈이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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