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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그룹경영 27년...이건희 회장, 위기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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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2008년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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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작고한 이병철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의 후계자가 된 이건희 회장은 30년 가까이 삼성을 이끌며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첫 위기는 신경영 선언 2년 뒤인 1995년 찾아왔다.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회장은 “한국의 기업은 2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베이징 발언’에 김영삼 정권은 발칵 뒤집혔다. 성수대교 붕괴, 대구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등 잇따른 대형 사고로 문민정부는 안그래도 궁지에 몰려있던 차였다. 삼성에 대한 신규 대출이 중단되는 등 곧바로 제재설이 흘러나왔다. 삼성 측은 발언의 배경과 진위를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결국 이 회장은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사과했다.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놓는 등 ‘성의 표시’도 해야 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안정기에 접어들던 2000년에는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이 불거졌다. 법학 교수 43명은 그룹 경영권 상속을 위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했다며 이 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재용씨 등 이 회장 자녀들이 계열사의 도움으로 손쉽게 막대한 재산을 형성하고 경영권 승계 발판을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며 삼성은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 회장은 2005년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고려대를 방문했다가 삼성의 노조탄압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부딪혀 학위 수여식이 파행을 빚는 등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해 8월에는 삼성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린 정황이 담긴 ‘안기부 X파일’이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녹취록에는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선거에서의 특정후보 지원 등을 위해 금품을 제공하며 전·현직 검찰 간부들을 관리해 온 정황이 담겨 있었다. 삼성이 경제계를 넘어 행정·사법에 걸쳐 나라 전체를 멋대로 주무른다는 ‘삼성 공화국’ 비판이 나온 것도 이때다.

이듬해 삼성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에버랜드 CB 편법 증여와 안기부 X파일 파문 등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 회장과 가족들의 사재 8000억원을 조건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공헌 확대, 구조조정본부 축소,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발족 등 후속 조치도 내놨다.

그러나 1년 뒤인 2007년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금품 로비 의혹을 폭로하며 이 회장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도 다시 불거졌고 ‘삼성 특별검사’가 임명됐다.

이 회장은 물론 부인 홍라희씨와 아들 재용씨 등이 줄줄이 특검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 자택과 그룹 전략기획실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 회장이 숨겨둔 4조5000억원대의 차명재산도 드러났다. 이 회장은 2008년 4월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기소 직후 이 회장은 본인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그룹 지배구조 개선방안 등이 포함된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현직에서 물러났다. 회장직을 맡은 지 21년 만이었다. 2009년 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확정했다.

이 회장은 유죄 확정 4개월만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단독 사면을 받았고 그로부터 3개월 뒤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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