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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세계 스마트폰 1위 '갤럭시' 원조 '애니콜' 탄생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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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와 종료버튼이 왜 제일 불편한 하단에 있습니까. 모토로라를 이기겠다고 했는데 자신 있소? 하다 안되면 나에게 찾아오시오. 내가 방법을 알려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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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고(故)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 회사 경영진들에게 ‘품질경영’을 강조하는 모습.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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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005930)회장이 휴대폰 연구개발 임원과 나눈 대화이다. 당시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던 모토로라의 제품은 통화와 종료버튼이 하단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이 달랐다. 한 손으로 버튼을 누르기에는 위에 있는 것이 더 편했고, 종료버튼을 누르다가 휴대폰을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10월 이건희 회장의 아이디어가 녹아든 삼성전자 ‘SH-770’이 출시됐다. 이 제품은 ‘애니콜(Anycall)’ 브랜드를 처음으로 사용한 휴대폰이기도 하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삼성전자는 1995년 8월 시장 점유율 52%를 기록하며, 만년 1위였던 모토로라를 누르고 시장의 선두주자로 올랐다. 특히 통화와 종료버튼을 상단에 배치하는 것은 전 세계 휴대폰 제조사의 표준이 됐다. 모토로라의 아성이 무너지고 애니콜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화 ‘애니깽’에서 출발한 그 이름 ‘애니콜’

1990년대 초 이건희 회장은 휴대폰 사업 강화를 지시하면서 "향후 1명 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에 주문에 시작된 ‘애니콜’ 프로젝트. 애니콜은 삼성전자를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로 올려놓은 숨은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4년 7월 새로 출시할 휴대폰에 참신한 이름을 붙이기 위해 소비자를 상대로 상품명 공모에 나섰다. 일반공모에서 총 5000통의 공모제안이 들어왔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휘어잡을 만한 이름은 없었다. 새 휴대폰의 광고를 맡은 제일기획에도 이름을 지어달라고 요청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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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광고 캠페인. /삼성전자



당시 회사에서 국내영업을 맡았던 오정환 전 전무는 ‘애니텔(Anytell)’이라는 이름을 내놨다. 오 전무는 당시 영화 ‘애니깽’에 대한 신문기사를 본 뒤 화장실에 가던 중 애니텔을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오 전무는 애니콜도 함께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오 전무는 애니콜이 더 끌렸다. 하지만 애니콜은 ‘콜걸(Call girl)’이나 ‘전화방’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다는 반대에 부닥치면서 결국 애니텔이 선정됐다.

사업팀은 애니텔에 대한 상표권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유사상표인 ‘앤텔(Antel)’로 인해 독점적 사용은 곤란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업팀은 다시 모여 회의를 했고, 결국 애니콜이라는 이름이 상표명으로 최종 결정됐다. 당시 아무도 애니콜이 세계 최고의 명품이 될지 몰랐다. 2008년 애니콜 브랜드의 가치는 5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혁신의 대명사 ‘애니콜’ 1999년 이미 스마트시계 출시

삼성전자는 애니콜 브랜드를 도입한 이후 세계 최초 기록을 세운 혁신 제품을 속속 발표하면서 승승장구했다. 1997년부터 본격적인 해외 수출에 나서게 된다. 홍콩 허치슨에 SCH-100, SCH-200을 수출한 것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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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H-T100’! 컬러 화면에 조약돌을 닮은 디자인이 결합돼 삼성 휴대전화의 신기원을 달성한 모델. 단일 모델로선 사상 최초로 1000만 대가 팔린 제품이다.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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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은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1997년 한 해 동안 미국시장에서 45만대를 판매해, 휴대폰 시장의 8%를 점유하며 에릭슨, 노키아, 퀄컴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1998년 10월에는 브라질에도 진출했다. 수출 물량은 1996년 16만대에서 1997년 76만대, 1998년 240만대로 급증했다.

애니콜 뒤에는 ‘최초’라는 수식어도 뒤따랐다. 삼성전자는 1999년 손목시계형 휴대폰인 일명 ‘워치폰’을, 1999년 8월에는 최초로 휴대폰과 MP3플레이어 기능을 통합한 MP3폰을 출시했다 이후 세계 최초의 TV폰, 2000년에는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카메라폰’을 선보이기도 했다.

애니콜의 성장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다. 이 회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휴대폰 개발의 핵심 부품 분야를 수직계열화 했고, 이는 향후 삼성전자가 발빠르게 스마트폰 사업으로 재편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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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배경에는 삼성전자의 ‘품질 경영’을 상징하는 ‘애니콜 화형식’이 있었다. 1995년 1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쌓인 애니콜 15만대가 해머와 불도저에 산산이 조각났다. 불량률이 11.8%에 이르자 생산제품 전부를 수거한 것이었다.

시가 500억원어치에 해당하는 제품 15만대에 불이 붙자 당시 무선부문 이사였던 이기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임직원 2000여 명이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봤던 이 사건 후 삼성전자는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그해 8월 모토로라를 누르고 당당히 국내 시장 1위에 올랐다.

◇애니콜로 쌓은 저력…애플 아이폰 탄생 위기 때 능력발휘

삼성전자는 애니콜의 성공으로 2000년대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1위를 눈 앞에 두기도 했다. 2004년에는 일명 ‘벤츠폰’으로 불린 ‘SGH-E700’이 ‘SGH-T100’에 이어 ‘1000만대 판매 달성’ 신화를 달성하며 본격적인 ‘텐밀리언셀러(ten million seller)’ 시대를 열였다.

이후 ‘블루블랙폰’ ‘울트라에디션’ ‘SGH-E250’ 등 수많은 제품이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소비자에게 ‘삼성 휴대전화=명품’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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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 텐밀리언셀러 시대를 이어간 ‘SGH-E700’.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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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2007년 6월 세상에 공개한 ‘아이폰’ 때문이었다. 아이폰은 단순한 최신형 휴대폰이 아니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모바일 패러다임 그 자체였다. 삼성전자에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저력은 살아있었다. 그동안 애니콜 개발을 통해 쌓은 기술력과 생산력, 부품 공급력 등의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제로(0)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했고, 2010년 최초의 갤럭시 시리즈인 ‘갤럭시S, A’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후 화면을 키운 갤럭시 노트와 웨어러블 기기 갤럭시기어와 핏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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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Z폴드2’.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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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의 인기가 갤럭시S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의 혁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져 온 것이다. 이후 스마트폰 시장에서 많은 도전자들이 나섰지만, 현재도 삼성전자는 애플과 함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지낸해에는 전 세계서 처음으로 폴더블폰을 선보이며 스마트폰 혁신을 이끌고 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5G(5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 43%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과거 애니콜 브랜드에서 쌓은 역량과 스마트폰으로 가야한다는 빠른 판단과 실행이 오늘날의 성공을 이끌었다"며 "애니콜은 삼성전자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수식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탁 기자(kt87@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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