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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라이온즈 창단 이끌고 전폭 지원…이건희 회장, 각별했던 야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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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사진] 1982년 2월3일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창단식을 갖고 삼성 라이온즈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창단식에서 이건희 구단주가 이수빈 대표이사에게 단기를 수여하는 모습.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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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상학 기자] 삼성 라이온즈 창단을 이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장기 투병 끝에 별세헀다. 향년 78세.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은 스포츠 사랑이 남달랐다.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아 2017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쳐 IOC 명예위원으로 위촉됐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년 반 동안 세계 각국 IOC 위원들을 만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도 이끌었다.

삼성스포츠단을 만들어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인기 종목을 비롯해 탁구, 테니스, 럭비, 배드민턴, 태권도, 육상 등 비인기 종목에 이르기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야구 사랑이 각별했다. 일본 와세대 대학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는 이 회장은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에도 큰 힘을 썼다. 1981년 12월11일 프로야구 창립총회가 끝난 뒤 대구.경북지역을 연고지로 라이온즈를 가장 먼저 창단시켰다. 초대 구단주를 맡아 구단 운영에 큰 힘을 실어줬다. 덕분에 삼성은 프로야구 초창기 선진 시스템을 선도하는 구단으로 나아갔다. 이는 KBO리그, 나아가 한국야구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985년 삼성은 국내 팀 최초로 ‘야구의 본고장’ 미국 전지훈련을 떠나 LA 다저스와 합동 캠프를 가졌다. 1985년 통합우승 이후 2군 전용훈련장 경산볼파크를 지어 인프라를 강화했다. 당시 아시아 최대 크기로 주목받았다. 1990년에는 사상 첫 외국인 코치 고든 마티를 영입했다. 1993년에는 삼성기 초중고 야구대회를 열어 지역 유망주 이승엽, 배영수를 키워냈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은 삼성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는 데 토대가 됐다.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을 남긴 1993년 신(新) 경영 선언 후에는 야구, 럭비, 골프를 삼성의 3대 스포츠로 지정할 만큼 야구를 아꼈다. 2002년 삼성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때는 “라이온즈의 우승 사례를 경영에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류중일 당시 감독에게 깜짝 전화를 걸어 “수고했고, 고생 많았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에도 이 회장의 병상 TV에는 항상 삼성 경기가 중계됐다. 특히 2014년 5월25일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승엽이 홈런을 터뜨리자 순간적으로 이 회장이 번쩍 눈을 떠 화제가 됐다. 당시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이 “선수들이 잘해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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