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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이건희, 글로벌 삼성을 키워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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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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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10일 이건희 회장이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 전시관에서 황창규 사장으로부터 차세대 메모리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회장은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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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기업 이상의 특별한 존재였다. 그 특별함은 상당 부분 이건희 회장에 기인한다. 긍정적으로, 그리고 부정적으로.

2019년 삼성전자 매출액 230조원이 그해 정부예산 469조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현실은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삼성전자의 국외 매출액 규모는 우리나라 수출총액의 20% 안팎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티브이(TV), 디스플레이, 가전 등의 분야에서 세계 1위 제품을 만드는 한국의 대표기업이다.

45살 때 총수 취임…“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제너럴일렉트릭(GE), 필립스, 모토롤라, 노키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엘피다, 인피니온, 후지쓰, 히다치....후발주자 삼성전자는 숱한 선도 기업들을 따라잡거나 제물로 삼으며 정상으로 질주했다. 인터브랜드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611억달러(약 71조원)로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에 이은 세계 6위다. 종합전자기업으로는 세계 최고이자, 미국 이외 기업으로는 맨 앞자리에 있다. 직·간접적으로 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전세계인은 삼성을 알고 있다.

국외매출 비중이 86%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2018년 영업이익 58조원은 그해 국내 무역흑자액 705억달러(약 85조원)의 68%에 해당하는 규모다. 무역수지, 산업경쟁력, 고용, 투자, 국가이미지 등 한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가 담당하고 있다. 2019년 62개 삼성 계열사들의 전체 자산에서 삼성전자의 비중이 절반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국가 경제에서 삼성의 비중은 막대하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1938년 삼성물산(삼성상회)을 창업하고, 이후 삼성전자를 설립한 뒤 1983년 선도적인 반도체 투자로 터전을 닦았지만, 한국의 선두 기업에 불과하던 삼성을 전자·디지털 분야 최고의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낸 경영자는 이건희 회장이다. 3남으로 태어난 그는 24살인 1966년부터 동양방송·삼성물산 등에서 10여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다가 부친 이병철 회장 사망 12일 만인 1987년 12월1일 삼성그룹 회장에 올라 그룹을 물려받았다. 45살의 그룹 총수는 취임사에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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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1993년 3월22일 열린 삼성그룹 창립 55돌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당시 <한겨레> 3월23일치에 실린 사진에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하기 위한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있다’는 설명이 달려 있고 사진에는 ‘제2창업 5주년 기념’이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 있다. 이 사진은 당시 삼성그룹에서 제공받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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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이 회장은 공개적 자리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말을 아껴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 그의 역할과 말이 널리 알려진 순간은 1993년 6월 독일에서의 선언이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한 호텔로 그룹 핵심 경영진 200여명을 불러모았다. 이 자리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그룹 간부들과 함께 68일간 유럽과 일본의 산업현장을 돌아보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설파하는 ‘벤치마킹 그랜드투어’를 했다. 그는 “(회사 미래를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 1년 전부터 하루 3~5시간 밖에 못잤고 깨어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고 위기론을 설파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앞선 기업들의 제품을 빠르게 모방해 저렴한 가격과 무난한 기능을 경쟁력으로 삼는 게 기본전략인 기업이었다. 그는 수원사업장 세탁기 조립라인에서 작업자들이 금형 사출 불량으로 닫히지 않는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일일이 깎아서 조립하는 모습을 고발하는 사내방송 영상을 보여준 뒤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자”고 주창했다. “국제화시대엔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 해봐야 1.5류다”라고 말하고, 양적 경쟁 위주에서 질 위주로 변할 것을 주문했다.

이때부터 이 회장은 불량품이 나오면 해당 생산라인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하는 등 품질 제고에 온힘을 쏟았다. 1995년 3월 구미공장 ‘무선전화기 화형식’은 상징적이다. 당시 무선전화기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자, 이 회장은 질책하며 불량제품 15만대(150여억원어치)를 수거해 공개 화형식을 가졌다. 품질 경영을 향한 비장한 각오였다. 1995년엔 닐 암스트롱, 찰스 린드버그 등 역사적 인물들을 내세워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시리즈 광고를 진행하며 ‘세계 일류’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신경영 선언’이 내건 대로, 삼성은 품질 우선으로 혁신했고 많은 제품이 ‘세계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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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에 참가해 개발 중인 자동차 시제품을 시승하고 있다. 당시 개발명은 KPQ, 이후 이 차는 SM5로 출시된다. 당시 출시 예정 일정은 1998년 3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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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자동차에 마니아적 취향


삼성이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의 성공에는 이 회장의 통찰력있는 리더십과 과감한 결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첨단기술과 제품 전환주기가 빨라 신속한 기술개발과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 이 분야에서 ‘이건희 경영’이 주효했다. 서울대 송재용·이경묵 교수는 <삼성웨이-이건희 경영학>에서 대규모 조직이면서도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춘 ‘패러독스 경영’이 이건희식 경영의 특징이라고 봤다. 주력제품인 디(D)램 반도체의 경우 개발과 양산·출시가 경쟁사보다 배 이상 빨라 경쟁자가 모방하기 힘든 방식으로 경쟁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하면서 1위로 올라선 뒤 이후 D램 세계시장에서 40% 넘는 점유율로, 28년째 부동의 1위를 유지하는 절대강자다.

이 회장은 영화, 전자제품, 자동차 등에 마니아적 취향을 갖고 젊을 때부터 직접 분해조립해 보며 기술적 지식과 통찰력을 키웠다. 2002년 이 회장이 디자인에 깊이 관여해 ‘이건희폰’으로 불리는 조약돌 모양의 휴대전화(모델명 ‘SCH-X430’)은 단일 모델로 1000만대 넘게 팔리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경영론’을 펼쳤다. 삼성은 학벌, 지연 아닌 철저한 실적 위주 인사가 자리잡은 기업으로 통한다. 그는 1990년부터 1년 이상 국외에서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익히는 지역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글로벌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며 국제화시대를 대비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2011년 “지역전문가 제도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성공한 핵심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한국의 삼성을 세계 속의 삼성으로 키워냈고, 한국사회가 단기간에 글로벌화에 적응하고 수혜를 누리게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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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한남동 소재 승지원에서 이건희 삼성회장(사진 오른쪽)이 한국을 방문한 주바치 일본 소니 차기 사장(사진 왼쪽)을 맞아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삼성그룹제공


안기부X 파일 등 정경유착의 상징


하지만 이건희 회장 자신과 삼성의 일부 모습은 ‘글로벌 표준’의 예외일 뿐더러 국내 법과 시민의 상식을 무시한 일탈과 퇴행의 연속이었다. 삼성은 세금없는 승계를 노린 탈법·편법 경영, 노조 설립을 방해·탄압해온 무노조 경영, 뇌물과 정치자금으로 권력을 관리하고 대가를 누려온 정경유착 재벌의 상징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전두환·노태우 특검 재판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100억원 뇌물 제공이 밝혀져 1996년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엔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삼성의 광범하고 조직적인 불법 비자금과 로비, 차명재산 의혹이 드러났다. 이듬해 ‘삼성비자금 특검’을 거치면서 이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삼성 경영에서 물러났다.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지만 1년 뒤 유례없는 대통령 단독사면을 받았다. 2005년 언론 보도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이학수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간 대화를 도청한 ‘엑스파일’이 알려졌다. 삼성이 ‘떡값’과 ‘정치자금’으로 정·관계 주요 인사들을 ‘삼성장학생’으로 포섭하고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쪽의 뇌물 공여자는 무사했지만 ‘삼성 떡값 검사’를 공개한 노회찬 의원은 통신비밀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삼성의 무소불위 권력을 실감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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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22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퇴진 성명을 발표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뒤에 서 있는 이들은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다. 김진수 기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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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탈법 승계…후계자의 발목 잡는 짐


삼성의 탈법·초법적 행위는 기본적으로 세금없는 상속·승계와 총수 일가의 변칙적인 계열사 지배력 유지 욕구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자신도 공익법인을 통한 변칙 증여를 받았다.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의 경영권(11조5000억원)을 넘겨받을 때 낸 증여·상속세는 181억원이다. 이 회장은 아들 이재용 부회장 등 세 자녀에게도 ‘세금 없는 대물림’을 이어갔다. 이재용 부회장이 글로벌 기업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든 돈은 60억원이다. 이 회장은 아들에게 1995년 60억8000만원을 증여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이에 대한 증여세 16억원을 냈을 따름이다. 44억원을 종잣돈으로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배정 등의 편법·탈법을 통해 회사와 주주의 몫을 자식들에게 빼돌린 것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는 삼성의 일상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내며 막대한 경제적 기여를 한 탁월한 경영자다. 거인이었지만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했다. 이 회장은 2008년 비자금 특검으로 퇴진하면서 순환출자 해소와 지주회사 전환을 약속했다. 숨겨왔던 차명 재산도 실명전환 뒤 벌금과 세금을 내고 남은 조 단위의 돈을 사회환원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숨지면서 풀지 못한 채 남긴 과제가 됐다. 편법과 탈법을 통해 최소한의 돈으로 경영권 승계를 이뤄내려던 비책도 결국엔 후계자의 발목을 잡는 짐이 됐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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