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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매일 14시간·180층 계단 죽음의 길, 얼마나 더 눈물을”…택배기사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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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 죽음의 행렬 ‘사회적 타살’ ‘택배재벌 살인’ 규정

과로사 원인 ‘공짜 분류작업’ 폐지·택배사업장 특별근로감독 촉구

뉴스1

2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 하트조형물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마련을 위한 추모 문화제'에서 택배노동자 장호성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조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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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저희들을 한번 봐주십시오. 집 주변 어디서나 보실 수 있는 평범한 택배 노동자들 입니다."

24일 오후 7시쯤 부산 부산진구 서면 쥬디스 태화 옆 하트조형물 인근에서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마련을 위한 추모문화제가 개최됐다.

이날 집회에는 택배 노동자들과 시민 100여명이 모여 국화꽃을 들고 올 한해동안 숨진 택배노동자 12명을 추모했다.

김재남 민주노총부산본부장 권한대행은 "아들, 딸 대학 보낼 때까지 일하겠다는 한 노동자가 한 달에 200만원도 못벌고 생활고에, 대리점 갑질에 견디지 못해 '억울하다. 다시는 저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고 입을 뗐다.

이어 "휴식시간, 병가, 연월차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며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만 하다가 8년만에 아이들과 가족 여행 가는 아침에 또 한명의 노동자는 세상을 떠났다"며 "총알 배송으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하루 14시간 노동은 27살 청년의 꿈도 가족의 행복도 앗아갔다"고 말했다.

또 "지금도 5만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14시간, 180층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하루 2만5000보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며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벗어나고 싶어도 발생하는 비용을 택배노동자가 책임지는 노예 계약서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권한대행은 이같은 택배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사회적 타살' 과 '택배재벌의 살인'으로 규정했다.

그는 "제발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회사와 정부에 수 차례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며 "지금도 택배재벌은 (택배 노동자들이)지병으로 숨졌다고 사망원인을 은폐하면서 '개인 사업주가 무슨 산재냐', '하청 대리점 책임이지 우리는 책임이 없다'며 유족에게 사과조차 없이 노동자를 두 번 죽이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정부는 죽음의 행렬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것인가"라고 규탄했다.

권용성 택배연대노조 부산지부장은 "배송을 하나 하면 택배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배송비는 평균 660원"이라며 "이렇게 열악한 배송비에 300개, 400개를 배송하는 고강도 노동인데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되는 분류작업을 하고있노라면 정말 몸이 파김치가 되어 버릴 정도"라고 했다.

권 지부장은 "수 개월 전부터 택배사와 정부에 눈물로 호소했다"며 "이대로 가면 과로사로 죽어가는 택배노동자가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제발 현장에 와서 점검도 하고 장시간 노동을 막아낼 수 밖에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처절히 호소했지만 택배사와 정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해서 발생되는 8번째 과로사, 9번째 과로사, 10번째, 11번째, 12번째 택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사과와 대책을 마련했다"며 "아직도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고 저녁 9시, 10시가 되어야 퇴근한다"고 말했다.

또 "발가락이 부러졌는데도 병원 갈 시간이 없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300~400개 물량을 배송하고 몸이 너무 아파 일을 하지 못하는데도 대신 배송을 해줄 사람이 없어 죽을 듯 말듯 하며 배송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훈 중대재해처벌법 부산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오늘은 이들이 죽었지만 내일은 또다른 이들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고 어쩌면 여기 있는 하나가 그 사람이 될 수 있다"며 "공짜 노동과 배송 수수료 같은 (기업의 택배 노동자 임금)후려치기는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생명을 후려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집회에서는 CJ 대한통운과 우체국 택배 노동자 20여명이 '민들레처럼'을 부르면서 숨진 택배노동자들을 추모했다.

택배 노동자 장호성씨는 노래를 부르기 전 "지금 이 순간에도 택배 노동자들이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다"며 "저희들을 한번 봐주십시오. 집주변 어디서나 보실 수 있는 평범한 노동자들입니다"라고 외쳤다. 장씨는 이어 "부당한 일을 시키지 마세요. 정당한 대가를 주세요. 너무 힙듭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었다"며 "택배 현장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사슬을 끊기 위해 시민 여러분들에게 노래를 들려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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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 하트조형물 앞에서 택배노동자와 시민 등 100여명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마련을 위한 추모문화제'에 참여해 택배 노동자들의 공짜 분류작업과 산재보상 적용제외 신청서 폐기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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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인 이날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마련 촉구 부산지역 노동·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과로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을 폐지하고 택배노동자의 산재보상 적용제외신청서를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또 산재보험료를 사용주가 전액 부담할 것과 택배사업장 전체를 중대재해 사업장으로 지정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지난 20일 오후 11시50분쯤 경기도에 있는 CJ대한통운 곤지암 허브터미널에서 근무하던 강모씨(39)가 주차장 간이휴게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지난 21일 오전 1시쯤 숨졌다. 강씨는 최근 택배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며칠간 밤샘근무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일에는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근무하던 김모씨(40대 남성)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대리점의 불합리한 갑질와 생활고를 호소하면서 '억울하다'는 내용을 담은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지난 12일에는 경북 칠곡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장모씨(27)가 퇴근한 뒤 자신의 집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씨는 코로나19 이후 물량이 크게 증가했는데도 센터 인력이 충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한진택배 서울 동대문지사에서 근무하던 김모씨(36)도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지난 8일 물량 420개를 배송하고 오전 5시에 귀가했다. 일요일인 휴무일이 지나고도 김씨가 출근하지 않자 동료들은 119에 신고했다. 동료들이 김씨의 주거지를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숨진 뒤였다.

국내 택배 노동자는 이달에만 5명이 숨졌다. 올 한 해동안 모두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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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 하트조형물 앞에서 진행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마련을 위한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바닥에 앉아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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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ah45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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