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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경남 산악서 8년 활약한 인명구조견 '그링고'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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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소방서에서 지난 2013년부터 활동해 온 인명구조견 '그링고'. /산청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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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할 터"…은퇴 앞두고 소회 밝혀

[더팩트ㅣ창원=강보금 기자, 산청=이경구 기자] 안녕, 빛나는 갈기를 휘날리며 초원을 달리는 흑마를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보단 짧지만 바람을 가르며 산위로 쏜살같이 올라가 사람들을 구조하는 저의 흙빛 털은 언제나 자긍심으로 빛난답니다!

저는 사람보다 만 배 이상 발달한 후각과 40배 이상 뛰어난 청각을 가졌답니다. 험난한 산중을 종횡무진할 수 있는 튼튼한 다리에다 실종자를 찾으면 저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우렁찬 목소리도 가졌죠.

저는 경남 산청소방서에서 2013년부터 인명구조견으로 일하고 있는 용맹한 세퍼트견 '그링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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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구조견 '그링고'가 실종자 신고를 받고 실종자 수색을 위해 소방대원과 함께 출동하고 있다. /산청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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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구조견은 1998년 11월 국내에 처음 도입됐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2013년 6월 14일부터 지금까지 총 153번을 출동해 8명(사망 5명, 생존 3명)의 실종자를 발견했습니다.(뿌듯)

인명구조견으로 일한 지난 7년4개월여가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저는 훌륭한 인명구조견이 되기 위해 2살 때 중앙119 인명구조센터에서 20개월 기초훈련을 받고 '국가공인 인명구조견 인증평가시험'을 당당히 통과해 경남 전역의 크고 작은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어느 날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날은 산청군에서 치매에 걸린 60대 남성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된 날이었어요. 저는 출동 명령을 받자마자 최선을 다해 달렸고 30분 만에 실종자를 산청군 시천면 일대 산 입구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줄 수 있어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그해 9월 경남 의령군에 있는 산에서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급히 출동한 날도 있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산 속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험한 산길이 실종자를 찾기 더욱 힘들게 만들었죠.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저는 그날 불과 40분 만에 깊은 산 속에 탈진해 쓰러져 있던 70대 남성을 발견하고 소중한 생명을 구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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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새로 투입된 인명구조견 '투리'가 산 속에서 실종자를 수색해 발견한 현장 모습. /경남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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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청소방서에는 저 말고도 라브라도 리트리버종인 '우리'(7살)와 올해 새로 투입된 저먼 셰퍼트종 '투리'(4살)가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올해만 해도 우리 셋은 39건의 출동을 통해 2명의 실종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예전만큼 날쌔지 못하다는 느낌을 조금씩 받습니다. 제 나이가 벌써 10살이나 돼서 그런가 봐요. 사람 나이로 치면 60대 중반에 임박한 것이죠.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중년이 된 느낌이 이런 걸까요.

아쉽지만 우리 인명구조견들은 보통 8~10년쯤 일을 하면 은퇴를 하고 일반 가정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남은 활동 기간 최선을 다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고 싶어요.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험한 산악지형을 제 네 발로 뛰고 또 뛰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자녀, 친구들을 모두 안전하게 소중한 이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제가 2013년 산청소방서로 발령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제 핸들러를 맡고 있는 손기정 소방관입니다.

저와 손기정 소방관은 이젠 서로 눈빛만 봐도 서로의 컨디션 등을 알아차릴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랍니다.

그는 저에 대해 "그링고는 활발한 성격이며 교감도 아주 잘 된다. 물론 구조견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온순함과 산을 누비는 용감한 성격도 두루 갖춘 멋진 녀석이다. 그링고와 함께 많은 시간을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왔다.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고 보람된 여생을 보내길 바란다"며 항상 저를 치켜 세워준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예요. 안녕.

(이 기사는 경남소방본부와 사천소방서 손기정 소방관과의 취재를 토대로 인명구조견 그링고를 의인화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됐음을 알립니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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