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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과학TALK] “핵폐기물 95% 줄인다”는 차세대 원전 기술 연구 결국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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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할 기술"... 20년 연구
"위험물질 방출·핵무기화 가능성" 반대 여론도
2018년 사업 잠정 중단… 재개 여부 불투명
원자력연·학계 "탈원전 별개로 관련 기술 필요"

조선비즈

국내에서 진행된 파이로프로세싱 실험 모습./한국원자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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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에 사용되고 남은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기술은 친환경 측면에서도 주목받는 신기술이다. 인체에 노출 시 해를 입힐 수 있는 강한 방사선(고준위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안전한 처리가 필요하지만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우리나라는 대신 지하 500미터 아래 임시 저장고에 1만 5000톤 이상을 보관하고 있다. 2018년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은 전국 원자력발전소의 임시 저장고가 이르면 2020년대부터 하나둘씩 가득차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연을 중심으로 1997년부터 이 문제에 대비해왔다. ‘파이로프로세싱(파이로)·소듐냉각고속로(SFR)’ 기술을 원천 수준에서부터 개발, 향후 실용화하겠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의 95%를 재사용하거나 태워 없애버리고 남은 5%는 기존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시작된 연구다. 미국 국립아르곤연구소, 아이다호국립연구소,­ 로스알라모스연구소와 함께 기술 확보, 실증 등을 위해 지금까지 8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다.

◇"사용후핵연료, 파이로 활용하면 발생량 20분의 1, 보관기간 300분의 1"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 원자핵의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다.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수가 많은 무거운 원소들은 원자핵을 분열시켜 더 가벼워지려고 한다. 양성자와 중성자 수가 235개인 우라늄이 원자력 발전의 연료로 쓰인다. 우라늄 원자핵이 두 덩어리로 나눠질 때 어느 덩어리에도 속하지 못한 중성자가 튀어나오는데, 이 중성자가 다시 다른 우라늄 원자핵과 충돌해 연쇄적인 핵분열이 일어난다. 핵분열 과정에서 처음 상태(우라늄 원자핵 1개)보다 나중 상태(2개로 나눠진 덩어리)의 질량이 더 작아진다. 질량-에너지 등가법칙(E=mc2)에 따라 줄어든 질량에 비례해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우라늄 연료를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는 우라늄과 초우라늄이 산소와 결합한 산화물들로 구성된다. 초우라늄은 플루토늄, 아메리슘, 퀴륨 등 우라늄보다 무거운 원소들을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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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프로세싱 과정./원자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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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는 사용후핵연료를 전기분해해 산소를 없애고 금속으로 되돌리는 ‘전해환원’, 이 중 재사용 가능한 금속 우라늄을 얻는 ‘전해정련’, 재사용 불가능한 ‘잔여 우라늄’과 초우라늄을 분리해 태워 없애기 위한 ‘전해제련’ 등으로 이뤄진다. 아직도 남은 성분들은 최대한 작은 공간에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별도로 처리된다.

재사용이 불가능한 성분들은 크게 고독성·장반감기 물질과 고방열·단반감기 물질로 나뉜다. 고독성·장반감기 물질에는 잔여 우라늄과 일부 초우라늄이 속한다. 내뿜는 방사선이 강하고 반감기가 길다. 반감기는 방사선의 양이 처음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방사선이 충분히 약해질 때까지 보관해야 할 기간을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 반감기가 길수록 방사선의 양이 천천히 줄어든다는 뜻이므로 더 오래 보관해야 한다. 고독성·장반감기 물질은 수백~수십만년의 반감기를 가져, 약 10만년간 보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방열·단반감기 물질은 반감기가 30년 정도로 짧아 장기 보관이 필요없는 대신 많은 열을 내뿜는다. 열 방출량은 같은 저장고 공간에 얼마나 많은 폐기물을 밀집해서 보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뜨거울수록 폭발 방지 등 안전성 확보를 위해 더 듬성듬성 보관해야 한다. 공간 효율을 떨어뜨리는 이같은 물질에는 세슘, 스트론튬 등이 속한다.

원자력연이 국내외 실험과 평가를 종합한 자료에 따르면 파이로 과정을 거칠 경우 고독성·장반감기 물질은 바로 태워 없어지거나 독성과 반감기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고방열·단반감기 물질도 열 방출량을 줄일 수 있다. 최종적으로 사용후핵연료의 95%를 재사용·연소 과정으로 없일 수 있고, 나머지 5%도 보관 기간을 기존 10만년 대비 300분의 1 수준인 300년으로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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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방식(위)과 파이로·SFR(아래)을 통해 처리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양과 보관기간 비교./원자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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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R은 나트륨(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차세대 원자로다.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기존 원전은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반면 SFR은 액체 나트륨을 사용한다. SFR의 운전 온도는 최대 섭씨 영상 550도인데 비해 액체 나트륨은 883도까지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액체 나트륨이 물보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할 수 있어 발전 출력도 높일 수 있다. SFR은 고출력 가동을 통해 고독성·장반감기 물질을 연소시키는 역할도 한다.

◇文정부, 안전성·핵확산성 논란에 잠정 중단… "재개 쉽지 않은 분위기"

파이로·SFR은 여러 나라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실용화된 사례가 없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가 신기술을 선도한다는 원자력 학계·업계의 평가와, 안전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 사업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탈원전 진영(정치권·시민단체)의 평가가 공존한다.

작년 6월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파이로·SFR은 백해무익하다. 세금을 쓸 필요가 없다. (사업을) 중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파이로·SFR이 또다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고, 플루토늄이 핵확산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이유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 플루토늄은 핵무기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연구 파트너인 미국 역시 우려를 제기해왔다.

원자력연에 따르면 국내 실험 결과 파이로 과정에서 방출되는 세슘의 양은 원안위가 정한 배출관리기준의 100분의 1 수준으로 관리 가능할 것으로 평가됐다. 파이로는 또 우라늄, 플루토늄 등이 섞인 물질을 다루지만 여기서 다시 순수 플루토늄을 분리해내는 공정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12월 이 사업의 재검토위원회가 출범, 4개월만인 2018년 4월 전면 재검토가 결정됐다. 안전성 규명과 사업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한미 공동 연구 활동만 남겨두고 시설 구축, 실증 사업은 모두 중단됐다. 사업 규모는 예산 기준 60% 감소했다. 오는 12월 재검토 기간이 만료, 내년 상반기에 재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사업 주체인 원자력연도 사업이 재개될지, 재개 시 원래 규모를 회복할지 등은 확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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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R의 주요 설계 정보./원자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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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토 결정 직전인 2018년 3월 원자력연은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술 확보는 국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며 "탈원전 정책 추진과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원자력연은 파이로·SFR의 공백을 초소형원자로 등을 개발·상용화하는 ‘혁신 원자력 연구개발(R&D) 사업’ 추진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날 "파이로·SFR 상용화를 위한 기술 수준이 100이라면 우리나라는 60까지 진행해왔다"며 "안전성 문제를 충분히 해결해 성공적인 개발과 상용화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사업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 속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기업 테라파워(TerraPower)가 정부 지원을 받아 SFR 기술을 활용한 소형 원전 ‘나트륨(Natrium)’을 10년 내 상용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고도 했다. 빌게이츠가 세운 원자력 발전 기업 테라파워는 소형 원전 나트륨을 미국 전역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8월 밝힌 바 있다.

김윤수 기자(kys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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