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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이삭 감독 자전적 영화 '미나리'…"미국 한인의 삶과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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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온라인 기자회견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상·관객상…내년 아카데미 후보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함께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다시 만난 듯 스스럼없고 화기애애했다. 분위기를 이끈 건 솔직하고 거침없는 배우 윤여정이었다.

지난 2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은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 팀이 23일 오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만났다.

정 감독과 스티븐 연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윤여정과 한예리는 부산에서 함께 했다.

처음 접해보는 화상 회의 시스템이 어색하긴 했지만, 부산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럼에도 관객과 서로를 만날 수 있게 된 기쁨을 나누며 기자회견은 예정됐던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제이컵(스티븐 연)은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 비옥한 땅에서 새 출발을 하겠다며 아칸소의 시골 벌판에 트레일러 집을 마련하고 땅을 일궈 한국 채소들을 기른다.

남편을 뜻을 따라 아칸소에 오긴 했지만, 모니카(한예리)는 아이들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부부를 돕기 위해 한국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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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정이삭 감독
[EPA=연합뉴스]



영화에는 실제 아칸소에서 태어난 정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이 많이 담겼다.

정 감독은 "윌라 캐더가 네브래스카 농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마이 안토니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윌라처럼 1980년대의 기억에 진실하게 다가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순자가 씨앗을 가져와 심은 미나리도, 가족이 겪게 되는 재난도 모두 정 감독의 가족에게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삶을 그대로 옮긴 영화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실존 인물에 영감을 받았지만, 배우들은 역할을 가지고 놀았다고 할 정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공동 혹은 각자의 작업으로 새롭게 완성했다"고 말했다.

윤여정 역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텐데 내가 똑같이 그려내야 하는지, 새롭게 창조해도 되는지 물었을 때 감독이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믿음이 갔다"며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책임감이 훨씬 크고, 전형적인 할머니나 엄마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 다르게 하는 것이 내 필생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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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족을 이끌고 아칸소로 이주하는 제이컵은 정 감독의 아버지이자 정 감독 자신이 투영된 인물이다.

정 감독처럼 이민자인 스티븐 연에게 제이컵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자, 스티븐 연이 프로듀서로까지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스티븐 연은 "캐나다를 거쳐 미시간으로 이주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았던 경험이 영화에 비슷하게 녹아들었다"며 "이민자의 삶이라는 것이 하나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데, 감독이 그려낸 세대 간 문화적 차이나 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여러 생각에 많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감독이 진실하고 정직하게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배우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넣어 구체적으로 실현해 내도록 여지를 줬다"며 "감독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데 대해서는 "미국인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인과 매우 다르다. 우리의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 우리가 아는 한국인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제작 과정에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려고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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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온라인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여정(오른쪽 두 번째)과 한예리(맨 오른쪽)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미나리'를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각본상, 여우 조연상(윤여정) 후보로 점치기도 했다.

윤여정은 "후보에 오른 것도 아니고 후보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건데 축하를 받아서 참 곤란하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정 감독은 "미국 관객들이 우리의 보물을 알아본 것"이라고 추어올렸다.

대신 윤여정은 "예산이 적은 영화라 도미토리에 같이 살면서 진짜 가족이 됐다"며 "최근 앙상블상을 하나 받았는데 그건 정말 그럴 만했다"고 말했다.

또 "크레딧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고 돈을 받기는커녕, 돈 내면서 고생한 사람들이 많다"며 "그 친구들이 영화의 비료가 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예리도 "시골에서 촬영했는데 거창하게 할리우드에 진출했다고 기사가 나서 부담스러웠다"며 "힘들었지만 치열하고 즐겁게 찍었고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나리'는 이날 오후 8시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한다. 배우 윤여정과 한예리가 무대에 직접 오르고, 정 감독과 스티븐 연은 영상 연결을 통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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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온라인으로 인사하는 정이삭 감독(왼쪽 위)과 스티븐 연(아래)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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