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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정치가 검찰 덮었다" 수사지휘관 떠난 '라임 수사' 향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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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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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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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사건 수사를 이끌던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22일 사의를 표명하자 향후 수사를 놓고 불확실성도 커지게 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책임자가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난 만큼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 기대한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법무부와 대검찰청 간 대립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朴,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 부적절..."

박 지검장은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에 따라 서울남부지검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검찰총장 지휘배제의 주요 의혹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했다.

박 지검장은 "검찰총장 가족 등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는 사건 선정 경위와 그간 서울중앙지검의 위 수사에 대하여 검찰총장이 스스로 회피하여 왔다는 점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면서 "검찰청법 제9조의 입법취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검찰권행사가 위법하거나 남용될 경우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05년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 시 당시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고 사퇴했다"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때 평검사인 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때와 상황은 똑같지 않지만 이제 검사장으로서 그 당시 저의 말을 실천해야 할 때"라고 했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 사유를 이해하기 어렵고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박 지검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박 지검장이 이처럼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작심하고 비판하자 검찰 내부에서는 더 강한 친정부 인사가 남부지검장으로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라임 사건이 본질을 잃고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법무부는 이날 독립적인 수사지휘 체계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금명 간 후속 인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서초동의 한 부장검사는 "박 지검장은 사실 친정부 검사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런 사람을 정치권과 언론에서 친정부 검사로 분류하니 스스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이제 법무부는 검증된 친정부 검사를 남부지검장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그렇게 된다면 라임 사건은 금융사기라는 본질은 잊혀지고 정치적 파장만 고려하는 수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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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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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여야 정치인들 연루 의혹 직접 보고받아...철저한 수사 지시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는 윤 총장이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여야 정치인들 연루 의혹을 보고받았는지, 보고받고 어떤 대응을 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당 의원들은 윤 총장이 검사장들로부터 직접 보고받으면서 특정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킨 것 아니냐며 추궁했다.

이에 윤 총장은 "부임 초기에는 검사장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면서 "의혹이 나오면 수사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앞서 송삼현 전 남부지검장은 라임 사건 관련 여야 정치인 연루 의혹은 여야 가리지 않고 검찰총장에게 직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지검장 또한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야당 정치인 비리 수사 부분은 5월경 전임 남부지검장이 격주마다 열리는 정기 면담에서 총장께 보고했고 지난 8월31일 그간 수사상황을 신임 반부패부장 등 대검에 보고했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윤 총장의 수사 무마 의혹이 헤프닝으로 끝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라임 수사가 금융사기라는 본질을 찾아 범죄 전모를 밝히는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섞인 반응이 나온다. 박 지검장은 "1조5000억원 상당의 피해를 준 라임 사태와 관련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1000억원대의 횡령·사기 등 범행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라며 "로비사건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일선 검사들은 라임 사건 수사 초기처럼 사기구조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범죄 전문 검사는 "금융범죄의 경우 돈의 흐름을 파악해 사기구조를 밝히는 게 최우선"이라면서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배후를 밝히는 게 순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민다중피해를 일으킨 범죄인만큼 범행구조를 면밀히 파악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라임 사건을 최초로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범행구조 밝히는 것을 1차적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박 지검장이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자리에서 물러난 만큼 남아있는 검사들은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며 "박 지검장이 남긴 말처럼 정치적 고려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해 나가다 보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내부 "사건을 사건으로 보지 못해 안타까워"

검찰 내부에서는 박 지검장 사퇴 등 최근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사건을 사건으로 보지 못해 안타깝다는 반응도 나온다. 사건 자체를 놓고 법률에 따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일선의 한 검사는 "박 지검장의 글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처분해도 반대하는 측에서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면 본인이 아무리 떳떳해도 공정성이 의심받는 것 같아 힘들다"고 말했다. 박 지검장 또한 이날 이프로스 글에서 "정치권과 언론이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비판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그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평검사는 "박 지검장의 글을 보며 현재 검찰이 처한 상황을 정말 잘 설명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 그대로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고 했다. 이 검사는 "마음편히 사건수사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 지검장은 "정치와 언론이 각자의 프레임에 맞춰 국민들에게 정치검찰로 보여지게 하는 현실도 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울 뿐"이라고 썼다.

이정현 기자 gor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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