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높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이번 인수 효과는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문 인수의 의미와 일각의 우려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치열한 내부 논의 끝에 적절한 가치평가를 통해 이루어진 딜이며 이번 인수가 국내 반도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다. 지난 21일 매일경제는 제주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SK CEO세미나에 참석한 이 대표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 대표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인수·합병(M&A) 역사를 새로 쓴 이번 인수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그는 10조원이 넘는 인수가격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 "시장에서 인수가격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절대 높은 가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가격에 대한 우려는 중국의 다롄 팹에 주목하다 보니 나오는 것으로 보며 이번 인수는 적절한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에 따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인수 대상에 포함된 중국 다롄 팹 시설이 노후했고,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미·중 무역갈등 역시 해당 시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또 이 대표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 강화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 육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인수가 특히 반도체 산업의 에코시스템(생태계)과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에도 그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소재(SK머티리얼즈)부터 원재료(SK실트론), 실제품(SK하이닉스)까지 이어지는 반도체 생산 수직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이는 다시 중소 협력사로 이어지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 대표는 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5G, 자율주행이 등장하면서 데이터 사용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어 반도체 시장의 성장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딜은 한국 반도체 산업 전반이 글로벌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포지션에 진입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꼽은 이번 딜의 핵심 인수 대상은 인텔의 솔루션, 엔지니어링 역량이다.
그는 "이번 인수의 핵심은 인텔이 보유하고 있는 솔루션 개발, 엔지니어링 역량"이라며 "인텔의 솔루션 노하우가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시장에서 절대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그 경쟁력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그 가치가 아주 크다"고 설명했다.
SSD는 복수의 낸드플래시를 붙여 제조하는 저장장치다. 낸드플래시를 SSD 제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처리 순서 등을 결정하는 '컨트롤러'와 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인 '펌웨어'가 함께 탑재된 '솔루션' 기술력이 필수다. 인텔은 낸드플래시 솔루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대표가 언급한 엔지니어링 역량은 연구개발(R&D), 생산, 품질관리 등 제품을 생산하는 전 과정에서 요구되는 기술과 노하우를 뜻한다. 인텔이 보유한 엔지니어링 인적자원과 그 시스템 확보를 통해 SK하이닉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eSSD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서버 구축을 위해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부품이다. eSSD의 글로벌 시장 규모만 12조원 수준에 달한다.
그는 이번 인수가 지나치게 경쟁구도로 해석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는 "인수 발표 직후 너무 삼성전자와의 경쟁관계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D램의 경우 양사가 전 세계의 70% 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한국 기업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번 딜을 통해서 단순 합산으로도 당사가 2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고 삼성전자까지 합하면 50%를 넘기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표는 이번 인수 역시 최태원 SK 회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는 인수작업을 수행했을 뿐 이번 딜 역시 최 회장의 리더십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며 "인수작업 진행 과정의 분기점마다 최 회장이 제시한 방향성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답했다.
[제주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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