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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쉼이 있는 여행 ③ 전등사 한옥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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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벗어나 피안(彼岸)의 세계로…사찰음식의 특별함도

(인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강 저쪽 둔덕'이라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 '피안'(彼岸)은 산스크리트에서 유래된, 이쪽 둔덕을 뜻하는 차안(此岸)의 상대어다.

현세를 차안(此岸)이라 한다면 피안은 현세를 벗어난 경지, 즉 해탈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잠시나마 환란의 세상을 피하고 싶다면 수도권에 있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강화도 전등사도 나쁘지 않다.

신라 때 축성된 정족산성이 감싸듯 둘러싸고 있는 전등사에는 탁 트인 전망이 매력적인 5채의 독립된 한옥으로 구성된 전등각이 있다.

한옥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사찰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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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성 위를 걷는 모녀 [사진/성연재 기자]



◇ 1천600년 역사 지닌 사찰의 한옥 템플스테이

'출가'(出家)라는 단어에는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 생활에 들어간다는 뜻도 있다.

출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같은 환란의 시기에는 고요한 산사로 들어가 모든 번뇌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수도권 인근 강화도에 딱 맞는 곳을 발견했다.

1천6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전등사에 한옥 템플스테이를 즐길 수 있는 전등각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체험해보기로 했다.

전등사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동쪽과 남쪽에 있다. 동문과 남문 두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서는 동문으로 올라가야 한다.

전등각 템플스테이 고객은 입장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방문객 대부분은 아래쪽 동문 주차장에 주차한 뒤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은 동문 주차장을 지나쳐 훨씬 위쪽까지 차를 몰고 올라갈 수 있다.

꼬불거리는 좁은 산길을 올라가면 두 번째 주차장을 만나는데, 이곳마저 지나쳐 경사가 진 길을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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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성 동문 [사진/성연재 기자]



언덕 위쪽에는 거대한 돌 성벽 아래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문이 있다. 동문이다.

이곳을 지나면 전등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고 문을 앞두고 우회전을 하면 한옥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전등각 주차장이다. 가운데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인도를 두고 한옥 5채가 양옆으로 흩어져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먼저 단아한 한옥 지붕 위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걸어 올라가니 잘 빠진 한옥 왼편으로 탁 트인 강화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오른편으로는 조금 전에 보았던 돌 성벽이 요새처럼 서 있다.

바깥 담벼락에는 주황색 능소화가 피어있고 그 뒤로 파란 하늘 아래 꼿꼿하게 솟은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건축물과 조경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조금 있으니 사찰음식 전문가인 사찰음식·전등각 운영팀장 정주미 씨 등 직원 두 명이 이부자리 등을 챙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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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옆의 한옥 템플스테이 건물 [사진/성연재 기자]



◇ 고요함에 물든 시간…스트레스는 저 멀리

전등각 바깥에서 능소화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열중하는 한 모녀를 만났다. 영국에서 유학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귀국한 손미영 씨와 엄마 김민희 씨였다.

김씨는 딸 미영씨가 귀국 후에도 날마다 갇혀있던 일상에 갑갑함을 호소하자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고 했다. 한옥 템플스테이 고객은 모녀와 필자뿐인 데다, 동선이 같아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전등사는 정족산성이라는 큰 산성 내에 건축된 유일한 사찰이다.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풍경은 이 정족산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족산성은 한반도 내륙을 노리는 적대 세력의 원정 상륙을 막는 방어기지로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현수 장군이 강화도에 상륙하려는 프랑스군을 격퇴했을 정도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족산성은 이로써 서구열강의 침탈을 막아낸 최초의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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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경내 [사진/성연재 기자]



우선 탁 트인 전망으로 이름난 동문 성벽 끝쪽으로 갔다. 아름다운 성벽을 배경으로 높다랗게 서 있는 이곳 역시 방어의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수령이 족히 1백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 사이로 빛이 쏟아졌다. 모녀는 행복한 듯 이곳저곳을 다니며 기념촬영을 했다.

맨 끝쪽에서는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쉰 뒤 전등사 내부를 둘러봤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절로만 알았는데,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창건된, 1천600여 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절이다.

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라는 절로 창건했다. 이후 고려 충렬왕 때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1614년 광해군 6년에 다시 불이 나 전소됐다. 7년 뒤인 1621년 상량식을 열고 중창을 완료했다.

저녁은 원래 공양을 하기로 했지만, 김씨 모녀 둘 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기에 건너뛰고 범종 타종 체험을 하기로 했다. 이것은 모녀가 유일하게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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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타종 체험 [사진/성연재 기자]



전등사 템플스테이에는 체험형과 휴식형 2가지가 있는데, 체험형은 새벽 예불을 포함해 여러 번의 예불과 울력 등에 모두 참여하지만, 휴식형은 저녁 범종 타종 체험 정도만 참여한다.

먼저 스님들이 목어를 두드린 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차례대로 범종을 타종한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지만 직접 타종을 하니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미영씨는 이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영국의 친구들에게 보여줄 것이라며 신이 난 표정이다.

전등사 경내에서 일반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들 몇몇이 자신의 타종 순서가 끝나자 서둘러 산으로 향했다. 지금쯤이 일몰을 감상하기 최상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스님 한 분이 따라나섰다.

그런데 김씨가 숨을 헐떡이며 뛰듯이 앞서 올라간다. 이유를 물으니 "왠지 종소리가 끝나기 전 일몰을 맞아야 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종소리는 계속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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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성 서벽치에 올라 석양을 즐기는 템플스테이 고객 [사진/성연재 기자]



스님께 여쭤봤더니 모두 33번 종을 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승산이 있다.' 필자도 서둘러 카메라 가방을 멘 채 산을 뛰다시피 올라갔다.

운이 좋았는지 저 멀리 서쪽 하늘에 석양이 막 시작되고 있었고 33번의 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종이 우리를 위해 울리고 있었다.

종소리와 석양이 공동 연출하는 풍경은 모든 이를 압도했다.

드론을 띄워 보니 일행이 서 있는 곳은 거대한 성벽의 튀어나온 부분이었다. 서쪽에 이빨(齒)처럼 튀어나왔다고 해서 이곳을 정족산성의 서벽치라고 한다.

서쪽 하늘 너머 높다란 산이 보이고 때마침 낀 구름 탓에 그 밑으로 높이를 알 수 없는 산들이 겹겹이 보였다. 강화도가 결코 작은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모두 고른 숨을 가다듬으며 석양의 고요함에 물들어갔다. 코로나가 주는 스트레스가 저만치 달아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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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정족산성과 전등사. 정족산성이 전등사를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쪽은 산성의 서벽치 [사진/성연재 기자]



◇ 특별한 맛, 사찰음식 정찬

어둑어둑해진 길을 헤치며 숙소로 돌아온 뒤 이부자리를 폈다. 전등사에서 자체 제작한 이불은 손님이 바뀔 때마다 커버를 교체한다. 이불은 보송보송했다. 반쯤 열어놓은 모기장에서 신선한 가을 공기가 전해졌다.

다음날 아침 가을비가 조금씩 내렸다. 전등사만의 사찰음식 정찬을 만나는 날이다.

일반 템플스테이 이용자들은 공양간에서 식사하지만 전등각 템플스테이 손님은 아침과 저녁 사찰음식 체험관에서 특별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전날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탓인지 아침 식사가 무척 기대됐다.

첫날 잠자리를 정리해준 정주미 선생은 11년 동안 사찰 음식을 연구해 온 사찰음식 전문가다. 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명장2호)으로부터 10년간 사찰 음식을 배웠다.

전등사로 온 지 1년쯤 됐다고 한다. 정 선생은 1천600년 사찰 음식의 맥을 잇기 위해 다양한 음식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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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레 준비된 전등각 사찰음식 정찬 [사진/성연재 기자]




식당은 고즈넉하고 고요했다. 조금 기다리니 국과 밥, 반찬이 한꺼번에 차려졌다.

전통적으로 강화도 사람들이 먹어온 노랑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전병이 나왔다.당근과 표고버섯, 새송이, 호박 등이 속에 들어가 있다. 3년 된 묵은지와 호박 마(麻) 소박이 등 특색있는 반찬들이 잇따라 나왔다.

절에서 담근 3년 된 묵은지도 있다. 묵은지는 1년 된 것과 2년 된 것, 3년 된 것 등을 번갈아 낸다고 한다.

샐러드에도 강화도 특산물인 인삼이 들어가 있다. 강화도 전통음식인 순무 김치도 빠질 수 없다.

정 선생은 전등각 템플스테이에서 제공되는 음식의 재료 대부분이 절에서 농사를 지은 것이라 했다. 전날 저녁 정 선생이 전등각 내부 텃밭에서 고추를 따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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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전등각 운영팀장 정주미 선생이 사찰음식을 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전등사에는 절 소유의 농장이 있다. 농사를 짓는 팀이 따로 있다고 한다.

인근 산에서 따 온 제철 산야초도 계절마다 제공된다. 봄철에는 두릅과 가죽 잎, 취나물 등 산나물이 음식 재료로 쓰인다.

특히 연밭이 있어 연잎 차와 연근 등으로 만든 음식도 다양하게 제공한다.

송이장아찌와 산초장아찌가 한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맛이 상큼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다.

고수 도토리묵 전도 특색이 있었다. 도토리묵을 전으로 만든 뒤 위쪽에 고수로 마감을 했다. 고추장으로 맛을 낸 버섯강정도 특이했다.

정 선생의 사찰음식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카시아 꽃 튀김이었다. 아카시아는 외래 식물이지만, 향이 좋고 국내 꿀 대부분이 아카시아 꿀이라 할 만큼 꿀이 많이 생산되는 수종이다. 아카시아 튀김이라니…

한 입 베어 문 순간 바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진한 아카시아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이쯤 되면 사찰음식을 넘어서 예술품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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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다원에서는 연꿀빵과 전통차, 커피, 팥빙수 등을 즐길 수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식사 후 어슬렁거리다 야외 카페인 죽림다원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해가 나왔다. 찬란한 가을 햇살 아래 전통차를 한 잔 마시고 싶어졌다.

차와 함께 이곳의 대표 메뉴인 연꿀빵을 주문했다. 연근과 마, 통팥이 어우러져 구수한 맛을 냈다.

전등각 정찬과 죽림다원 연꿀빵이 전등사를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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