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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단독] "성추행 상황 자세히 묘사해봐" 인권 모르는 서울대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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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경찰 조사보다 더 고통"
가해 교수는 대면 조사도 안 해
"잇단 성비위 비호 기관 전락" 비판
한국일보

21일 서울대 음대 내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서울대내 반복되는 권력형 성폭력 사건 해결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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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잇따른 교수 성비위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성비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서울대 인권센터'가 피해자에게 피해 상황을 세세히 묘사하라고 요구하는 등 오히려 피해자 인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인권센터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정작 가해 교수를 상대로는 대면 조사를 벌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동료 교수를 비호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21일 제자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대 음대 A교수의 피해자 B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조사 받는 게 경찰서에서 받는 조사보다 더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서울대 학생회 등에 따르면 A교수는 2015년 공연 뒤풀이 후 졸업생이던 B씨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태운 뒤 B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지난 8월 불구속 기소됐다. B씨는 당시 사건 이후 연주회 등에서 참여가 배제돼 어쩔 수 없이 음악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충격으로 지금까지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B씨는 믿고 따르던 스승에게서 당한 피해라 어디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 앓다 피해 발생 3년 뒤에야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고 한다. 이후 B씨는 성폭력 상담소인 해바라기 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뒤 지난해 6월 경찰서에 정식으로 A교수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 단계에서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자 B씨는 지난 6월 서울대 인권센터 문을 두드렸다. 법적 처벌과 별개로 A교수에 대한 학교 측의 정식 징계가 뒤따라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B씨는 인권센터에서 조사 받는 동안 당시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날 정도로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인권센터 조사위원이 신체접촉 부위와 횟수를 세세히 물어봐 상당한 수치심을 느꼈다"며 "특히 피해자인 나에게 피해사실을 입증할 증거까지 요구해 현장에서 증거 자료까지 다 보여줬다"고 했다.

반면 인권센터는 가해 교수를 상대로는 코로나19를 이유로 대면조사 대신 서면조사만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최근 A교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걸 뒤늦게 알고 인권센터에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요청하지 않아서'라는 답을 듣고 날 바보 취급하는 걸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성비위 피해자를 위한 인권센터의 미흡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비단 B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성비위 혐의로 해임된 서어서문학과 C교수,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또다른 음대 D교수 피해자들 역시 A씨처럼 인권센터 대응이 미흡했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이 피해자 동의를 얻어 공개한 'D교수 피해자 E씨의 진술서'를 보면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인권센터는 도리어 "가해교수가 학교에 나오는 시간과 공간을 피해 학교에 다니라"고 조언했다.

학교 안팎에서는 서울대 교수로 구성된 인권센터 심의위원회와 징계위가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교수는 "사실상 교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며 "센터장을 외부 인사로 하는 등 인권센터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의원 역시 "서울대 모든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인권센터가 오히려 가해 교수를 비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정감사에서 인권센터장을 외부 전문가로 전환하는 등 개선책 마련을 주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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