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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공화 30년 아성 美남부...“민주당이면 똥개도 뽑힌다”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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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걸친 두 당의 남부 회전(會戰)

지난 12일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의 최근 유세 일정을 보면, 이번 미 대선의 승부처가 드러난다. 열흘 새 두 번 방문한 노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 조지아 등의 이른바 미 남부(South)와 위스콘신·미시간·아이오와 등의 중서부(Midwest)와 경합 주들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진력을 쏟는 곳도 물론 이곳들이다. 이 중에서 미 남부는 최근 30년 주지사와 연방 상·하의원을 모두 공화당이 독식한 공화당 ‘아성’이었다.

조선일보

2020년 현재 공화당(빨간색)이 주지사-연방상하의원을 모두 장악한 남부 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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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이 남부에서 버지니아를 제외한 10개 주를 휩쓸며 155석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승리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 텃밭에서조차 바이든에 밀리는 형국이다. 역사적으로 남부에서의 두 당의 운명은 계속 엇갈렸고, 그 중심엔 ‘인종 문제’가 있었다.

◇1950년대까지 “민주당이면 똥개도 뽑힌다”

미국에서 ‘남부’라고 할 때에는, 노예제 폐지에 반대해 반란한 ‘남부연합’(Confederacy)'에 속한 11개 주와 주변 주 등 남동부 16개 주를 뜻한다. 텍사스에서 플로리다까지 미국 인구의 3분의 1인 1억1000만 명이 산다.

남북 전쟁 시절 이 지역의 주(主)산업은 면화 산업이었고, 흑인 노예 노동력에 의존했던 이 지역 백인들은 당연히 에이브러햄 링컨의 공화당에 반대해 민주당을 지지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전쟁 전(前) 삶과 가치를 유지하려고 했고,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의식이 강했다. 또 지금과는 반대로, 작은 정부와 낮은 세율(稅率), 주(州)의 권한 확대를 외쳤다. 흑인이 투표권을 얻고 나서도 민주당이 장악한 남부 주들은 갖가지 제한적 법률을 제정하고 백인 테러집단 KKK와 결탁해 흑인의 투표권을 박탈했다. 올해 미 전역에서 철거되는 수모를 당한 남부연합의 ‘영웅’ 동상들은 남부 민주당원들이 세웠다.

흑인 유권자는 공화당으로 몰렸고, 많은 남부 주의 공화당 최고 지도부는 흑백이 공유했다. 그러나 공화당원이 당선될 가능성은 20세기 중반까지 희박했다. “공화당원만 아니라면, 누렁개(yellow dog)가 출마해도 뽑힌다”는 말이 돌았다.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모두 백인우월주의자였다.

◇남부를 얻으려는 공화당의 ‘백합(lily white)’ 전략

미 공화당은 20세기 들어 주(州) 단위 공화당 수뇌부에서 흑인과 갈색 인종을 배제하고 ‘백합처럼 하얀(lily white)’ 백인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니그로(Negro) 당에는 백인들이 표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뉴욕 포덤대의 보리스 히싱크 정치학 교수에 따르면, 이 전략은 실제로 주효했고, 1950년 이후 남부의 외곽 주들인 아칸소·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테네시에서부터 공화당은 대선·연방 의원 선거에서 이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흑인 유권자들은 공화당 외에는 달리 갈 곳이 없었다.

◇1964년 공민법 서명한 존슨, “남부를 공화당에 넘겼다” 한탄

민주당의 남부 장악에 금이 간 것은 해리 트루먼이 194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주창한 흑인의 인권 신장을 강조한 당 정강·정책이었다. 그리고 린든 존슨 대통령(민주)은 1964년 마침내 흑인 인권을 보장한 미 공민법에 서명했다. 민주당과 남부 백인들 사이의 ‘결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존슨은 이 법에 서명한 날 밤 주위 참모에게 “우리는 방금 남부를 공화당에 아주 오랫동안 넘겼다”고 말했다. 정확한 예언이었다. 1965년 모든 공공기관에서 합법적으로 인종 간 분리를 했던 짐 크로법(1876~1965년)이 폐지됐고, 유색인종의 투표 행위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는 투표권법이 제정됐다. 지난 2007년 공화당이 남부를 장악하게 된 과정을 분석한 미 잡지 애틀랜틱 몬슬리에 따르면, 이제 저(低) 세율·연방정부 권한 축소·백인우월적 도덕적 가치·안보 중시의 보수적 견해를 갖고 있던 이른바 ‘딕시민주당원(Dixiecrats)’들은 민주당에 환멸을 느꼈다.

◇시험대에 오른 공화당의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와 1968, 1972년 대선 후보이자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각각 ‘딕시 작전’ ‘남부 전략’으로 딕시민주당원들을 끌어들였다. 양당이 함께 추진했던 남녀의 동등한 법률적 권한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안(ERA)도 보수적인 여성운동가 필리스 슐래플리의 성공적인 반대 운동으로 30개 주의회의 비준을 받고 끝났다. 슐래플리는 ERA 개헌이 이뤄지면 여성도 군 복무해야 하고 여성 근로와 탁아가 의무화되며 가정 주부들에게 불리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런 주장은 “백인 여성은 섬세하고 다치기 쉽고, 흑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남부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이후 공화당은 민주당의 여러 사회 정책들을 반(反)기독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레이건은 1980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지미 카터의 고향 조지아를 제외한 남부를 완벽하게 장악했고, 1994년 이후 공화당은 남부 지역의 주지사·연방의회 선거를 압도적으로 휩쓸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1992년 빌 클린턴(민주)은 조지아·아칸소·켄터키 등 남부 5개 주에서 승리했다. 모두 남부 출신인 텍사스의 조지 W 부시와 테네시의 앨 고어가 붙은 2000년 대선에서 부시는 남부연합에 속했던 11개 주에서 전승(全勝)했다. 부시가 획득한 선거인단 수는 271명(과반수 270명). 고어가 고향 테네시만 이겼어도 대선 결과가 바뀌었겠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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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 현장인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피트-그린빌 공항 활주로에 모인 수천 명의 지지자들. 공화당은 지난 30년간 미 남부 주들을 장악해왔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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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당은 지난 30년간 이렇게 미 남부를 장악했다. 그러나 1960년대를 겪으며 애초 노예해방과 인종통합의 당이었던 링컨의 공화당은 ‘백인우월주의’ 정당으로 몰리고, 노예제 폐지를 극렬 반대했던 민주당이 이제 인권을 옹호하는 상징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은 남부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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