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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화] '미쓰 안은영'에게 '비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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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배우를 영화 한편만으로는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영화와 저 영화를 연결지어 영화에 대한 여러분의 지식의 폭을 넓히고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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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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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남들과 달랐다. 친구는 거의 없었다. 어른이 돼 학교에 자리 잡았다. 교사는 교사이나 전쟁 같은 입시경쟁이 펼쳐지는 한국 학교에서 주목받을 만할 담당은 아니다. 학생 때는 왕따, 교사가 돼서는 외톨이다. 매운 음식으로 고독을 달래며 성실히 살아도 삶은 늘 변두리다. 힘겨운 삶 속 유일한 위안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남자 교사다.

영화 ‘미쓰 홍당무’(2008)의 러시아어 교사 양미숙(공효진)과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속 안은영(정유미)은 여러모로 닮았다. 남들은 없는, 특이한 면모를 지녔다는 공통분모도 있다. 양미숙은 속마음을 쉬 드러내는 안면홍조증이 있고, 안은영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현상을 젤리 형태로 볼 수 있다. 안면홍조증이 살아가는 데 딱히 쓸모가 없는 반면, 안은영의 능력은 사람과 세상을 남몰래 구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두 사람의 큰 차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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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 빈티지홀딩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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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와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경미 감독이 빚어낸 세계다. 두 작품이 닮은 꼴인 이유다. ‘보건교사 안은영’이 정세랑 작가의 동명소설에 기대 만들어졌다지만 이 감독의 가치관과 취향이 많이 반영됐다.

‘미쓰 홍당무’와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이마 넓은 여고생이 등장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성아라(박혜은)에게서 ‘미쓰 홍당무’ 속 서종희(서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학교가 주요 공간이라는 점이 교집합이기도 하다. 학교는 앞으로 우리 사회를 책임질 재목을 육성하는 곳이라기보다 기성사회 못지않게 음모와 배신과 암투가 오가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유부남 교사와 미혼 여교사가 농밀한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가난하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학생이 폭력에 시달리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장소다. 약자끼리 연대를 시도하나 난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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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밀은 없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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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다른 영화 ‘비밀은 없다’(2016) 역시 학교를 위태로운 공간으로 묘사한다. 신진 정치인 종찬(고 김주혁)이 비밀스러운 관계를 형성하고, 종찬의 딸이 아버지의 일탈을 악용해 성적 향상을 꾀하면서 복수를 꿈꾸는 곳이다. 정글 같은 학교는 승자만이 살아남는 정치판과 다르지 않다. 영화 속에 가족은 있으나 원만한 가족관계는 없다. 가족에 기댈 수 없는 성소수자 학생들은 제 살길을 찾으려 한다. 스릴러인 ‘비밀은 없다’는 코미디를 앞세운 ‘미쓰 홍당무’와 ‘보건교사 안은영’과는 영상의 온도 차가 크다. 하지만 세상(적어도 학교)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일하다.

베일에 싸인 학교에서 비밀을 아는 이들은 여주인공들이다. 양미숙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인물이자 서종희의 아버지인 서종철(이종혁)과 동료 여교사 이유리(황우슬혜)의 은밀한 관계를 안다. 안은영은 교정을 떠도는 나쁜 기운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교를 노리는 유사종교집단의 음모를 알아내기까지 한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손예진)은 딸의 죽음을 파헤치다 남편의 불의를 인식하게 된다. 요컨대 ‘미쓰 홍당무’는 ‘보건교사 안은영’이자 연홍이다. 이들에게 ‘비밀은 없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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