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3554762 0252020102163554762 01 0101001 6.2.0-RELEASE 25 조선일보 0 false true false false 1603216800000 1603216873000

일요일밤 나와 새벽까지 증거인멸… 대통령 보고 문건도 삭제

글자크기

[월성1호기 감사결과] 산업부 직원들 “중요하거나 민감한 자료부터 없앴다” 실토

20일 공개된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결과 보고서에는 감사를 방해하기 위한 산업부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자료 및 증거 은폐 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었다”고 했을 정도로 산업부의 ‘감사 방해’ 행위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감사 방해 행위의 책임을 물어 해당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한편 사실상 검찰 수사를 의뢰(수사 자료 송부)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감사원이 20일 오후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국회 제출과 동시에 공개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모습. 2020.10.20/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원은 이날 “지난해 11월 감사원 감사에 대비해 산업부 국장과 부하 직원이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실제 삭제하는 등 감사를 방해했다”고 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감사원의 현장 감사가 임박하자 과거 탈원전 정책 수립·실행에 관여했던 산업부 내 직원 일부가 모여 대책 회의를 열었다. A 국장은 “컴퓨터 등에 저장된 월성 1호기 관련 문서는 물론 이메일·휴대전화 등 모든 매체에 저장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감사원은 ‘최근 3년 치의 내부 및 청와대 보고 자료’ 일체를 요구했지만 산업부는 상당수를 누락한 채 일부만 제출했다. 감사원이 재차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부하 직원 B씨는 감사관 면담 전날인 지난해 12월 1일 일요일 밤 11시 24분부터 다음 날 새벽 1시 16분까지 약 2시간 동안 총 112개 폴더에 있던 관련 자료를 송두리째 삭제했다. B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자료 삭제는 (다른 근무 직원이 없는) 주말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과장이 말씀하셔서 주말에 삭제를 하려 했는데 잘 기회가 나지 않았다”며 “감사관과 면담이 잡히는 바람에 진짜 삭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밤늦게 급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그는 “관련 자료가 있는데도 없다고 하면 마음이 켕길 것(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자료가 없다고 말하기 위해 업무용 폴더들을 삭제한 것”이라고 했다. B씨는 올해 7월 다른 정부 부처 위원회에 파견돼 근무 중이다.

조선일보

최재형 감사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을 나서고 있다. 감사원은 이날‘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작년 9월에 착수해 의결까지 380여 일이 걸렸다. /김지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료를 삭제한 방법도 전문적이었다. 과거 자원개발 비리 수사를 받았던 산업부에선 ‘그냥 delete(삭제) 키로 자료를 지우면 전부 복구될 수 있으니 제대로 지워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B씨는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다른 내용을 적어 문서를 수정한 뒤 삭제했다. 하지만 삭제할 파일양이 너무 많자 파일을 단순 삭제한 뒤 폴더 자체를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B씨가 삭제한 문서 제목은 ‘장관 보고 사안’ ‘탈원전 주요 쟁점’ ‘에너지 전환 이해관계자 동향’ ‘한수원 사장 면담 참고 자료’ 등이었다.

감사원은 삭제된 444개 문서 중 324개는 디지털 포렌식으로 복구했지만, 나머지 120개는 복구하는 데 실패했다. 핵심 자료 상당수가 조직적 감사 방해로 삭제되면서 감사가 차질을 빚은 것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지난 15일 “산업부 공무원이 관계 자료를 거의 삭제해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사실을 감추거나 허위 진술하면 추궁하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산업부는 이에 대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등은 한수원이 추진하는 사안이라 주로 구두 보고로 이루어졌으며, 이번 감사와 관련하여 최대한 성실히 제공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자료 삭제를 주도한 A 국장과 B씨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제82조에 따라 징계 처분(경징계 이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또 “문책 대상자들의 자료 삭제 및 업무 관련 비위 행위 등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수사 참고 자료로 송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형사 처벌을 위해 사실상 검찰에 수사 의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무원들이 자료 삭제나 왜곡, 거짓 진술 같은 감사 방해 행위를 대담하게 벌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야권에선 “청와대와 산업부 고위층이 관련된 것 아니냐" “공무원이 믿는 구석 없이 이런 일을 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의 조직적인 자료 은폐와 감사 방해 행위에 청와대가 ‘든든한 뒷배’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은중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