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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김진숙이 ‘옛 동지’ 문 대통령에게 묻는다…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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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복직촉구 발언 -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씨가 2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해고자 복직촉구‘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글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용접사인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 1986년 해고돼 한진중공업으로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20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서 ‘원로선언 추진모임’이 진행한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복직촉구 ’ 기자회견에서 이 편지를 읽었다. 이날 함세웅 신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시민사회 인사 172명이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했다.

1981년 당시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김 지도위원은 “산재 환자의 불이익 처우 문제, 생활관 및 도시락 개선 방안, 조합의 공개운영 방안 등이 심각하다”며 노동조합 집행부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2009년 민주화보상위원회가 사측에 복직을 권고했지만, 복직을 하지 못한채 올해 정년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였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자리에도 같이 있었다”면서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 한 사람은 열사라는 낯선 이름을 묘비에 새긴 채 무덤 속에, 한 사람은 35년을 해고 노동자로, 또 한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극과 극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지도위원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지적했다. 그는 “노동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 데 노동자들은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난다”면서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또 죽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이라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는 걸까”라고 물었다.

이어 김 지도위원은 “그저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저의 복직을 응원하겠다고 오셨다. 우린 언제나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하는 걸까”라며 “항소이유서와 최후진술서, 추모사를 쓰며 세월이 다 갔습니다.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까. 옛 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김진숙 지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에 전한 글 전문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진 걸까요.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였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자리에도 같이 있었던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

한 사람은 열사라는 낯선 이름을 묘비에 새긴 채 무덤 속에,

또 한 사람은 35년을 해고노동자로, 또 한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극과 극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운명이었을까요. 세월이었을까요.

배수진조차 없었던 노동의 자리, 기름기 하나 없는 몸뚱아리가 최후의 보루였던

김주익의 17주기가 며칠 전 지났습니다.

노동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데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노동자들.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또 죽습니다.

실습생이라는 노동자의 이름조차 지니지 못한 아이들이 죽고, 하루 스무 시간의

노동 끝에 ‘나 너무 힘들어요’라는 카톡을 유언으로 남긴 택배 노동자가 죽고,

코로나 이후 2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죽고, 대우버스 노동자가 짤리고, 아시아나

케이오, 현중하청 노동자들이 짤리고, 짤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수년째 거리에 있습니다.

연애편지 한 통 써보지 못하고 저의 20대는 갔고, 대공분실에서, 경찰서 강력계에서,

감옥의 징벌방에서, 짓이겨진 몸뚱아리를 붙잡고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청춘이 가고, 항소이유서와 최후진술서,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사람의

추모사를 쓰며 세월이 다 갔습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는 걸까요.

그저께는 세월호 유족들이 저의 복직을 응원하겠다고 오셨습니다.

우린 언제까지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합니까.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

옛 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

2020. 10. 20.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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