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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시시비비]포퓰리즘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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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기독교가 정신과 생활의 근본이던 중세의 유럽에서 이자금지법(usury doctrine)은 엄격했다. 자금을 빌려주는 데 어떤 유형의 이자나 부담금도 금지했다. 이자금지법은 모세 오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루카복음 6장 34절과 35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신약성경에도 예수의 입을 빌려 이자를 금지하는 구절이 있다.


이자금지법이 공식화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 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제들이 이자금지법을 지킬 것을 명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자금지법이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확대된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샤를마뉴 때라고 한다. 물론 기독교를 믿지 않는 비신자에게까지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유태인의 이자 거래는 허용됐으며 유태인이 특별히 금융에 밝은 데는 그런 사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자금지법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유럽의 경제, 사회, 정치를 크게 제약했으며 금융제도와 기관의 발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을 수 없으니 자금이 꼭 필요한 사람이 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은 당연하다. 편법이 등장한 것 또한 당연하다. 예를 들어 80파운드를 빌려주고 계약서에는 100파운드를 빌려준 것으로 명시하는 방법이 있었다. 국제 거래에서는 환율을 높게 쳐줘 이자를 보상하는 편법이 사용되기도 했다.


중세에도 자금을 기한 안에 되갚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돼 있었다. 이를 포에나(poena) 또는 모라(mora)라고 했다. 때로는 그와 같은 규칙을 악용해 자금을 일부러 늦게 되갚으면서 벌금을 숨겨진 이자의 형태로 지급했다. 그러나 이 모두 다툼의 소지가 있었다. 따라서 이자금지법은 적어도 거래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는 제도임은 틀림없었다.


이자금지법의 기본 전제는 이자가 수탈이고 불로소득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 나라에는 이자를 그런 시각에서 보는 인사가 적지 않은데, 현대 경제학에서 이자가 지급돼야만 하는 이유는 많다. 특히 금융은 저축된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때 이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격 기능을 한다.


이자율이 왜곡되면 자본은 엉뚱한 곳에 쓰이게 된다. 그때 경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망가진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가 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하는 가격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자율, 더 넓은 의미에서는 금융에 정치가 개입함으로써 자원 배분의 기능을 왜곡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망국을 초래한다.


대한민국의 포퓰리즘이 위험수위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기본대출권이라는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자율을 최고 10%로 제한하고 불법 사채 무효화와 장기 저리 대출 보장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부 미상환에 따른 손실은 최대 10%까지 국가가 부담해 누구나 장기 저리 대출을 받는 복지적 대출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이다. 금융을 복지 정책에 사용하자는 주장인데 그런 정책을 편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지금의 베네수엘라가 정확하게 그와 같이 했다. 포퓰리즘의 덫이 나라를 뒤덮기 시작했다. 금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 경제가 나락으로 빠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조장옥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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