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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여성 그리고 주인공[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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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러브란 무엇인가”,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은 목하 영어 공부 중이다.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고애신(김태리)은 봉건적 배경의 진보적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 진보성을 보여주는 게 바로 ‘배움’이다. 근대식 학당에 출입하고, 외국어를 배운다. 남몰래 총기 사용법도 배운다. 배우는 것 자체가 여자에겐 도전이었으니 말이다.

아주 오랜 기간 여성서사엔 금기나 금지가 등장했다. 만지면 안 되는 물레, 먹어서는 안 되는 양배추, 열어서는 안 되는 문처럼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화 속 금기의 문들은 현실적 금지의 문으로 변주되기 시작했다. 여자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 학교, 여자가 일할 수 없는 직장처럼, 여자가 해서는 안 될 이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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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여성에 국한된 이야기라기보다 사무실 의자나 책상처럼 늘 거기 있을 것이라고 외면받는 소박하고 힘없는 자들의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옳다. 여성서사라는 틀이 너무 좁다는 말이다. 영화는 우먼으로서의 어려움이나 장애도 이야기하지만 무엇보다 “커리어”에 방점을 찍는다. 일하는 사람이 되는 환상, 그 환상과 현실이 만났을 때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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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 비헤이비어>에선 대학이 금지의 현장이다. 여성 입학을 불허하던 대학이 존재했던 영국에서 샐리 알렉산더는 보기 힘든 옥스퍼드 여성 학생으로 그려진다. 여성운동가이자 역사가로 알려진 그녀였지만 교실에선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진지한 동료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대학의 문이 여성에게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진짜 열린 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장면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다룬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도 등장한다. 하버드 로스쿨 여성 입학자들은 공공연히 남자의 자리를 뺏은 존재로 언급되고, 그녀의 발언은 진지한 의견이 아닌 과도한 참견 정도로 여겨진다. 하버드 로스쿨의 문은 열었지만 로펌 취업에 실패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진지하게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의 문이 닫혀 있었던 것이다.

실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많은 작품은 문을 여는 과정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배우고,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게 성취해야 할 투쟁의 결실이던 시절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곧 개봉하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비슷한 맥락의 영화로 짐작된다. 그룹, 영어 등의 제목이 여성에게 불허된 배움이나 취직, 승진에 대한 이야기를 예상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여성에 국한된 이야기라기보다 사무실 의자나 책상처럼 늘 거기 있을 것이라고 외면받는 소박하고 힘없는 자들의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옳다. 여성서사라는 틀이 너무 좁다는 말이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이자영(고아성)은 시작 부분에서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우먼으로서의 어려움이나 장애도 이야기하지만 무엇보다 “커리어”에 방점을 찍는다. 일하는 사람이 되는 환상, 그 환상과 현실이 만났을 때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일하는 사람이 되는 환상, 그 환상과 현실이 만났을 때를 다루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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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규직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들은 그 꿈의 직장이 음험한 협잡과 비리, 범죄의 온상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밥줄을 지키려 힘있는 자들이 기회주의적 선택을 할 때, 상고 출신이라며 무시받던 그들이 어떤 윤리적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의 불평등, 여성의 배움, 여성의 각성이 아니라 순진한 기대감을 가졌던 존재에서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에 집중한 것이다. 즉 여성서사가 아니라 그냥 성장서사라 부르는 편이 더 옳다.

불평등과 싸우고 닫힌 문을 열고 나아갔던 이야기는 영화가 매우 사랑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흑인 남성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흑인 영화라고 부를 수 없듯이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여성서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안이하게도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쉽게 여성서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성의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닫혀 있던 문을 하나둘씩 열어가던 여성-사람들의 이야기를 뜻하던 페미니즘이 언제부터인가 갈등의 낙인처럼 활용된다. 영화 속 여성의 등장 비율을 따지는 벡델지수는 페미니즘 수치가 아니다. 세상 구성원의 절반이 여자이므로 여성의 이야기가 대중영화의 절반쯤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인간적인 바람이 바로 벡델지수다. 남자 셋이 주인공인 영화는 장르영화인데 여자 셋이 주인공인 영화는 왜 여성영화로 분류되어야 할까? 그런 성비가 기준이 되지 않는 순간, 그런 미래를 기다린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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