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유철주, 전국 선사 17명 대담 '적명을 말하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평생 봉암사에서 조실(祖室)을 마다하고 수좌(首座)로 계시면서 외국의 스님들과 학자들에게 한국의 간화선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던 적명스님의 열반은 불교계에 너무나 큰 손실임에 틀림없습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이 생전 적명스님을 회고하며 기억을 풀어놨다. 성철스님을 지근거리에서 시봉했던 그는 적명스님을 타고난 수좌이면서 책을 상당히 가까이했다는 점에서 스승인 성철스님과 닮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24일 입적한 적명스님 1주기를 앞두고 선사들이 기억하는 그의 삶이 '적명을 말하다'(사유수출판사)에 담겨 출간됐다.
불교 전문작가 유철주 씨가 전국 사찰과 선원 등을 찾아다니며 17명의 선사를 만나 대담하고 적명스님의 삶을 채록했다.
불교계에서 적명스님은 꼿꼿했던 수행자로 기억된다.
2009년 대중은 그를 사찰 최고 어른을 뜻하는 봉암사 조실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스님은 이를 사양하고 수좌 자리를 고집했다. "나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조실 말고 수좌로 살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스님은 수좌들과 함께 큰방에서 수행 정진하고, 노동하고 공양하며 철저하게 대중 생활을 했다. 선방의 수행자였으나 종단에 일이 있을 때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때론 행동에 나서면서 많은 수좌가 그의 뒤를 따랐다.
1939년 제주에서 난 적명스님은 나주 다보사 우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9년 해인사 자운스님에게서 사미계를, 1966년에는 비구계를 받았다. 해인총림과 영축총림, 고불총림 선원장 등을 지냈고, 전국수좌회 공동대표도 맡았다.
수좌로 살다 수좌로 떠나는 게 소망이었다는 그는 2019년 12월 24일 수좌들과 함께 봉암사 뒤 희양산에 올랐으나 두 발로 내려오지 못했다. 며칠 뒤 그를 보내는 영결식에서는 '허허롭다'는 안타까움이 허공 사이로 퍼졌다.
적명스님을 '정직하고 당당한 투철한 수행자'로 기억한 도법스님은 남원 실상사 극락전을 찾아온 유 작가에게 적명스님이 없는 허망함을 털어놨다.
"깨달음을 위시한 무거운 주제들을 허심탄회하게 묻고 따지고 생떼를 부려도 괜찮은 스님이 여기에 안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온 세상이 텅 빈 느낌입니다."(책 102쪽 가운데)
302쪽. 1만5천원.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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