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동환이 1인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로 1년여 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그는 “실존이 위협받는 요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원은 어디에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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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념, 당연히 연극이지. 영원히 죽지 않을 유일한 종교거든. 오래 전 연극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을 때 (…)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진실을 볼 수 있었어. 훌륭하게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연극이란 무엇일까, 대체 연극에 어떤 힘이 있기에 그토록 많은 배우들이 무대를 갈망하는 걸까. 반세기를 연기에 바친 노배우는 연극 ‘고곤의 선물’ 대사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경기 안양 성결대 인근 연습실에서 마주한 배우 정동환(71)은 여전히 뜨겁게 연극을 꿈꾸고 있었다. 목소리가 청년처럼 젊었다. 그는 22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서울 장충동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극단 피악의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초연한다. 1969년 데뷔해 무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1인극은 처음이다.
극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토대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성찰한다. 정동환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이반과 알료샤 형제, 대심문관 등을 오간다. 독백이 아니라 철학적 논쟁으로 이뤄진 대사를, 의상이나 소품 변화 없이, 그의 말을 빌리면 “오롯이 몸만 가지고” 표현한다. 악마성과 천사성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는 주제의식을 대변하는 설정이다.
그는 2017년 출연했던 7시간짜리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렸다. 당시 그가 연기한 대심문관의 20분 독백 장면은 지금도 연극계에서 회자된다. “그때도 굳이 그 작품을 해야 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단어 하나만 막혀도 전체가 무너지는 역할이었으니까요. 이번 선택도 무모하다는 거 잘 압니다. 자칫하면 경력에 치명타가 돼서 배우 인생이 끝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연극계에 이런 작품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도전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연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의 한 장면. 극단 피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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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4번이나 한 그는 연극을 산행에 비유하곤 한다. 힘겨운 여정을 마친 뒤 밀려오는 벅찬 감흥이 꼭 연극 같다고 했다. “산행은 고통스러워요. 그런데도 왜 오르는 걸까. 그 고통이 행복하거든요. 연극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하는 이 일은 반드시 고통스러워야만 해요.”
이번 작품에선 “최악의 고독”과 마주했다. 2시간 가까이 무대를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은 또 다른 고통이다. “극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인간은 절대적 고독 속에 신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번 해 보는 거예요. 과연 내가 그 고독을 극복해 낼 수 있는지.”
배우 정동환이 기타 연주에 담백한 흥얼거림을 얹었다. 연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는 “1인극도 처음인데 기타 연주까지 처음이라 매일 진땀 난다”며 껄껄 웃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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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겐 TV 드라마와 영화로 친숙하지만, 그는 스스로 ‘연극인’이라 여긴다. 50년간 드라마 수백편에 출연하면서도 단 한 순간도 연극을 놓지 않았다. 그는 “무대는 살아 있는 역사”라며 “들숨과 날숨 중에 하나라도 못하면 생명이 끝나듯, 내겐 연극이 그런 존재”라고 했다. ‘연극 정신’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그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독백을 쏟아냈다.
“연극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극한의 고통과 고뇌, 내적 갈등을 겪고, 마침내 존재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는 노정인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 의지를 넘어선 우주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는 곧 우주와의 화해인 것이며, 인간에 대한 긍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도 당부한다. “‘그 인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인물로서’ 연기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극한의 고뇌와 내적 갈등을 견뎌내야 한다”고. 연극이 곧 인생이었던 그가 평생 붙들고 씨름한 화두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무대에서 내려올 날이 있겠죠. 그게 이번 연극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적어도 내 도전에 생명력이 있었다면, 무대에서 쓰러진다고 해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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