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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해협 수장된 ‘북송저지 공작대’ 12명…“정부가 불법행위”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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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200여만 명에 달하던 재일동포들 가운데 140여만 명이 귀국했지만, 나머지 60여만 명은 타의 혹은 자의에 의해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아 동포 사회를 형성했습니다.

일본 적십자사는 일본 정부에 재일동포의 귀국문제 해결을 요청했고, 1958년 9월 북한의 남일 외상이 '일본으로부터의 귀국자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성명으로 재일 한국인의 귀국을 공식으로 요청함으로써 북일 교섭이 시작됐습니다.

남북간 체제경쟁이 첨예한 상황에서 불거진 '북송' 소식은 이승만 정부를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북송은 북한체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대일통상 중단조치, 미국 중재요청 등으로 반발했지만, 대일통상 중단조치는 오히려 한국에게 불리할 뿐 일본에 대한 압력수단이 될 수 없었고, 미국 또한 북송문제는 인도주의적 문제로 미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며 사실상 일본의 입장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이승만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재일교포 북송저지 공작을 수행할 재일교포북송저지공작대(북송저지공작대)를 결성해 일본에 파견하기로 하고는 내무부 치안국의 주관 아래 북송저지공작대 공작원들의 선발과 교육을 실행합니다.

■ "경찰 임용" 속여 감금한 후 '조총련 간부 납치' 교육

문제는 그 선발 과정에 각종 불법이 동원됐단 점이었습니다.

내무부 치안국은 1959년 여름 경 전 모 씨를 비롯한 재일학도의용군 및 경찰시험 응시자 출신을 공작원으로 선발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당시 경찰시험응시자들에 대하여는 공작원 임무에 종사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경찰에 임용하는 것처럼 속여 소집장소에 출석시킨 다음, '공작임무를 수행한다는 국가기밀을 알게 되었으므로 임의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요해 서울 강북구 우이동 훈련장으로 데려갔습니다.

학도의용군들에 대해서도 동지회를 통해 공작활동을 할 요원을 선발한다는 막연한 내용만을 알리거나, 개별적으로 접근해 선발하면서 그 임무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국가기밀을 알게 되었으므로 거절할 수 없다'는 식의 기망 또는 강압적 방법을 동원해 선발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우이동 훈련장에 천막을 치고 합숙시키면서 가족과도 연락을 두절시킨 채 1개월간 외부와 통제된 상태에서 재일동포 설득작업, 조총련 간부 납치 등 불법적 방법에 의한 공작활동을 실행하기 위한 비밀교육을 시켰습니다.

이후 정부는 교육받은 공작원들을 7차례에 걸쳐 선박에 태워 일본 항구로 밀항시켰습니다. 치안국 요원이 마련한 가짜 선원증을 가진 상태였습니다.

전 씨 등 공작원 12명은 1959년 12월 13일, 거제도에서 일본으로 출항하는 '제6차 수송선 명성호'로 불법 밀항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날 바다엔 폭풍이 예고돼 있었고, 치안국이 포섭한 배는 파도가 심한 대한해협을 건너기에 안전상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공작일정을 이유로 배를 무리하게 출항시켰습니다.

배는 21일 남해 해상 큐슈 근해를 지나던 중 태풍을 만나 침몰했고, 이 사고로 전 씨 등 승선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일본에 건너간 공작원들도 이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돼 생계곤란을 겪었습니다. 이들 중 24명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돼 1년여간 복역한 후 강제 송환됐고, 그 가족들은 공작원들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계마저 방치당하는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무너지면서 이들에 대한 보상 등도 모두 없던 일이 됐습니다.

공작원이었던 김홍윤씨는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북송저지 공작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합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북송저지 공작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공작원이었던 참고인들을 면담하여 망인과 그 유족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려 하였으나, 망인의 이름, 생년월일, 사망 사실만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신청인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 청취, 자료조사 등을 거쳐 2007년 4월 다음과 같은 진실규명 결정을 합니다.

- 정부가 법률의 근거 없이 국무회의 의결로 북송저지공작대 공작원을 선발하여 교육하였고, 선발 과정에서 응시자들에게 기망 또는 강압적 방법을 사용해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훈련장으로 이동시켰으며, 위 훈련장에서 외부와 차단한 채 공작원 교육을 받게 한 후 위험한 밀항선에 승선시킨 것은 신청인 등 공작원들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통신의 자유 및 공작원 가족들의 알권리를 침해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함.

- 공작원 및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함.

북송저지 공작사건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 공작원 아들, 국가배상소송 내 승소…사법부 "정부 위법" 첫 판단"

앞서 대한해협을 건너다 사망한 전 씨는 1953년 아들과 딸을 1명씩 두었으나, 혼인신고 및 출생신고는 마치지 못한 채 사망했습니다. 전 씨의 형은 이들을 자신의 아들딸로 출생신고했습니다. 전 씨의 아들은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그는 2018년 10월 전 씨의 친생자임을 확인받습니다.

이후 전 씨의 아들은 지난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내무부 치안국이 기망 또는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해 망인을 공작원으로 선발하였고, 가족 등 외부와 연락을 차단한 상태에서 교육한 후 위험한 밀선에 승선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이러한 일련의 불법행위(이하 ‘이 사건 불법행위’라 한다)로 희생당한 망인과 그 상속인인 원고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무부는 재판 과정에서 "내무부 치안국이 공작원 선발 과정에서 망인에게 기망 또는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음을 피고(정부)가 알았다거나 밀파 과정에서 조난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피고(정부)가 예상하였음에도 그 사고 발생을 용인하였다고 볼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다퉜습니다.

정부는 이어 "전 씨의 아들이 갖는 손해배상청구권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7년 4월을 기산점으로 보아야 하고, 그로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정한 3년의 시효기간이 경과하였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도 항변했습니다.

사법부는 이같은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 씨의 아들에게 2억5000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이 북송저지 공작사건에서 '정부의 불법성'을 인정해 '배상'을 명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특임자보상법)을 만들어 유족 등에게 보상해왔지만, 북송저지 공작사건과 관련해 사법부가 정부의 위법 여부를 판단한 적은 없었습니다.

■ "국민 보호의무 지는 정부가 기본권을 침해한 중대한 인권침해"

법원은 "내무부 치안국은 망인에게 공작 임무에 관한 자세한 설명 없이 공작원으로 선발하였고, 교육 기간 가족과의 연락을 차단하였으며, 기상 악화로 항해가 위험하다는 사정을 예상하고도 망인을 밀선에 승선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바, 이로 인하여 망인의 신체의 자유, 통신의 자유, 생명권 등이 침해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960년 개정 전 헌법 제27조는 '공무원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수임자이며 언제든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국민은 불법행위를 한 공무원의 파면을 청원할 권리가 있다.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받은 자는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부장판사 김영욱)은 이 규정을 근거로 내무부 치안국 소속 공무원들이 한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망인과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 이유에 전 씨를 위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했고,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북송저지 공작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작원으로부터 받은 사진에는 망인을 비롯해 제6차 수송선 명성호에 승선한 이들이 군복을 입고 있으며, 국무회의 안건 경위보고서에 기재된 '돌풍으로 조난, 선박 전파로 공작원 12명 전원 순직하였음'이라는 내용은 전 씨가 위 사건의 희생자임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가 망인과 함께 사망한 공작원들의 보상금을 259,399,785원(그 중 사망 위로금 177,480,000원)으로 산출한 점 등을 들어 사망한 전 씨에 대한 위자료는 2억 원, 그 자녀인 원고에 대하여는 5000만 원을 위자료로 책정했습니다.

액수의 근거는 △이 사건 불법행위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하는 피고가 망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위법성이 큰 점 △망인이 공작원으로 선발된 이후 사망할 때까지 열악한 환경에 지내며 가족과의 연락도 차단되었고, 밀파 수단이나 사망 경위 등을 더하여 볼 때 망인이 받은 정신적 고통은 극심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망인 사망 당시 미성년 자녀인 원고가 성장 과정에서 가장인 망인의 부재로 겪었을 경제적 정신적 고통 등이었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정부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공작원 선발과 교육, 밀파 과정은 그 성격상 극비리에 진행되었고, 권위주의 정권 아래 발생한 내무부 치안국의 위법행위를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알기 어려운바, 망인이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하여 사망하였다는 것을 원고가 알았다고 보기 부족하고,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 원고를 비롯한 유족에게 통지되었다거나 원고가 위 진실규명결정 당시(2007년)에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을 알았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원고가 2017년 9월 경찰청에 특임자보상법 관련 순직자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그 공개내용을 열람·등사하면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존재와 내용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봄이 타당하고, 그로부터 3년 이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며 시효 내에 적법하게 소송을 제기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특히 "원고가 사망한 전 씨의 친생자라는 판결이 확정된 2018년 이전까지 원고는 법적으로 망인의 상속인에 해당하지도 않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정부가 패소한 뒤 법무부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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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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