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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재해·경기침체땐 재정준칙 예외… ‘맹탕준칙’ 비판에 정부 고민 [재정준칙 발표 돌연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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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도 그만 안지켜도 그만
적자율 3~5년으로 느슨한 관리
예외조항 둬 의무화는 불가능
나랏빚 가파르게 느는데
4년간 채무 180조 가까이 폭증
여야도 계산기 두드리며 반대만


파이낸셜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 회의에 참석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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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정준칙 발표를 추석 이후로 돌연 연기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정한 규범이다.

코로나19 확산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정부가 올해 59년 만에 4차례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고, 서둘러 재정준칙을 만들어 나랏빚이 과도하게 불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9월 말까진 재정준칙을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정치권에서 여야가 제각기 이유로 정부 재정준칙 발표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 연기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당초 정부가 9월 말까지 발표하려 했던 재정준칙은 추석 연휴 이후로 연기됐다. 벌써 두 차례 연기다. 정부는 앞서 지난 8월 재정준칙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9월 중으로 한 차례 미룬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해외 사례를 보려고 검토하고 있고 9월 말까지 발표하려 한다"고 밝혔다. 전날까지만 해도 김용범 기재부 1차관 역시 "(재정준칙 발표를 앞두고) 당과 협의하는 절차가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재정준칙 발표가 연기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발표 이전부터 새어나온 '맹탕 준칙'에 대한 비판에 부담을 느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재정준칙의 구체적 지표를 법(국가재정법)이 아닌 시행령에 담는 방안, 재정수지 적자율을 1년 단위가 아닌 3~5년 평균으로 관리하는 방안, 재해·경기침체 시 적용을 예외로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대한 '유연한' 재정준칙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식이 될 것이란 비판이 거셌다. 예외조항을 두면 국가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재정지출과 국가채무 등 재정 관련지표의 목표수치를 정하고 이를 지키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재정준칙을 운용하는 선진국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영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문 순채무 비율을 전년보다 감축하도록 하고 있고, 독일도 헌법에서 부채의 신규발행을 GDP 대비 0.35%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갈수록 나랏빚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엄격한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언급된다. 실제 지난 4년 동안 국가채무가 180조원 가까이 폭증하면서 올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6.1%로 사상 최초로 6%를 넘어섰다. 국가채무비율은 43.9%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4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8.3%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시 정부재정이 투입되는 공적연금을 감안하면 실제 나랏빚은 기재부 전망을 웃돌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치권과 조율작업을 아직 마치지 못한 것도 재정준칙 발표 연기의 한 가지 배경으로 꼽힌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재정준칙 제정에 부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다. 다만 속내는 제각각이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코로나19 여파로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시점에서 재정운용의 운신 폭을 제약할 수 있다는 반발이 거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전대미문의 비상시국으로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추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르는데, 정부 정책을 완전히 묶어버리는 재정준칙 법제화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 역시 "재정준칙을 만든다면 위기국면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재부 안보다 더 엄격한 재정준칙 기준선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위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재정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필요할 때는 재정을 써야 하지만, 위기상황일수록 재정건전성 회복방안을 함께 마련하면서 재정을 풀어야 한다"면서 "법적 구속력이 약한 시행령으로만 규제하는 건 재정준칙 실효성을 없애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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