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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美의 기술 제재 압박에 자립 궁지 몰린 중국, 반도체·SW 산업 최대 10년간 비과세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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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 언론을 살펴보면 ‘기술 자립’에 관한 내용이 눈에 종종 띈다. 화웨이, 텐센트, 틱톡 등 중국 대표 기술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서 중국 지도부가 관영 언론을 통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설파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9월 13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과학자 좌담회에서 발언한 주요 사항을 집중 보도했다. 시 주석은 “현재 중국의 발전은 국내외 환경에 복잡한 변화가 발생하는 국면에 직면해 있다”며 “국가의 미래가 과학기술 혁신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과학자들이 역사적 책임을 짊어지고 과학기술 개발을 위해 더욱 노력해주길 바란다”며 “중국 과학자들이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정신으로 과감히 혁신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각 부처와 관리들이 과학 관련 지식과 인재를 중시하면서 과학기술 혁신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의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지시했다.

이번 좌담회는 중국의 차기 경제발전 계획인 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의 과학기술사업 발전과 관련해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중국 공정원과 과학원 원사 등 대표 과학자 7명이 참석해 중국 과학기술 체제 개혁을 건의했다.

이날 시 주석의 발언이 의미 있는 것은 최근 미국의 전방위 압박 속에 중국이 14차 5개년 규획을 통해 ‘경제 자립’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경제발전 계획은 대미 의존을 줄이고 자율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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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이 8월 19일 안후이성의 성도 허페이에 있는 ‘안후이 혁신센터’를 방문해 새롭게 부상하는 혁신 산업과 기술 브리핑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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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 당국은 14차 5개년 규획 관련 초안 작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내에선 이번 규획의 핵심 키워드로 ‘쌍순환(雙循環·이중 순환)’을 꼽는다. 쌍순환은 시진핑 주석이 지난 5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처음 언급한 단어로, 내수 위주의 자립경제에 집중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조성하는 동시에 대외 경제도 함께 발전시킨다는 경제 전략이다.

시 주석은 지난 9월 1일 열린 ‘중앙 전면 심화 개혁위원회 회의’에서 “국내 대순환을 위주로 국내와 국제 간 ‘쌍순환’이 서로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 구조를 형성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쌍순환 전략이 나온 배경에는 미중 신냉전 국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양국은 올해 코로나19 책임론 공방을 시작으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에 따른 갈등, 대만·남중국해 이슈로 인한 마찰 등 사실상 전방위적인 대립 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국제 정치적 충돌뿐만 아니라 무역 및 기술 영역에서의 신경전이 치열해지면서 중국 지도부가 경제 자립을 더욱 주창하게 된 것이다. 경제 자립 목표에서 우선순위로 꼽히는 것은 ‘첨단기술’ 영역에서 미국 의존도를 빠른 시일 내에 낮추는 것이다. 그 중 반도체 산업 육성을 둘러싼 중국 당국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지난 8월 4일 중국 당국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SW) 산업을 중심으로 최대 10년간 비과세 혜택을 부여하고 국가주도펀드를 통해 대대적인 금융지원에 나서는 것을 골자로 한 산업 육성정책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핵심 부품인 반도체 영역에서 해외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동시에 인공지능(AI), 5세대 통신(5G) 등 첨단기술과 반도체 산업 간 연계형 발전을 꾀하려는 목적도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SW) 산업 발전 정책’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15년 이상 사업을 이어온 반도체 제조기업이 28㎚(나노미터) 및 이보다 더 고도화된 공정을 적용할 경우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현재 중국에서 이 같은 공정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SMIC(중신궈지), 상하이 화리웨이마이크로, 허페이 창신 등이다. 또 65㎚ 이하 28㎚ 초과 반도체 공정을 적용하는 경우 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고 이후 5년간 세율을 낮춰주기로 결정했다. 세제 감면 혜택은 반도체 제조업체가 처음 흑자를 내는 해부터 적용된다. 중국 당국의 세제 혜택 부여 기준을 살펴보면 반도체 초미세화 공정에 성공하는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정책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의 경우 회로 선폭이 미세할수록 연산 처리 능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초미세화 공정기술이 반도체의 성능을 좌우한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7㎚ 공정 개발에 성공한 반면 중국 반도체 업계를 이끌고 있는 SMIC의 기술력은 현재 28㎚ 공정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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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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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은 정책을 통해 세제 혜택뿐만 아니라 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대표적인 금융지원은 국가주도펀드를 통한 직접 투자 방식과 자본 시장을 통한 자금 융통 촉진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14년 반도체 산업 진흥을 위해 국유펀드인 ‘국가 집적회로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해 1차로 218억달러(약 26조원)의 자금을 모집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2차로 290억달러(약 34조원) 규모의 자금을 추가로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또 중국 당국은 반도체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주식 시장 상장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SMIC의 경우 지난 7월 ‘중국판 나스닥’으로 통하는 상하이거래소 과학혁신판(커촹반) 2차 상장을 통해 462억8000만위안(약 9조원)을 조달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도 연합해 자국 기술 발전을 도모하고 나섰다. 지난 9월 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기술기업 출신 임원들이 주축으로 만든 벤처캐피털 업체 ‘차이나유럽캐피털’은 반도체,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기술 관련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연내 50억위안(약 8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SMIC 창립 멤버였던 조셉 셰, 리정위 폭스콘 전 사장 등이 펀드 조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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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부회장 출신인 장쥔 차이나유럽캐피털 회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될 중국 기업은 나날이 늘어날 것”이라며 “중국 기술 기업들은 현재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고 우리는 미국의 공급망에서 배제된 중국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은 미국을 의식해 자국의 첨단제조 육성책인 ‘중국 제조2025’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 않지만 해당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정은 그대로 걷고 있다. 중국 제조2025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당국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중국 대표 반도체 기업들을 우선적으로 키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다만 미국이 중국 기술굴기의 싹을 자르기 위해 화웨이와 SMIC 등 중국 대표 반도체 관련 회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어 중국의 기술 자립은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 내부에선 미국의 제재가 기술 자립형 경제로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 시각과 기술 분야의 내적 순환을 초래해 ‘기술 고립’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김대기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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