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교전 격화…민간인 희생자도 나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러시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중재 나서…터키,아제르바이잔 지지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러시아주도 집단안보조약 충돌 우려 나와

CBS노컷뉴스 임형섭 기자

노컷뉴스

지난 7월(현지시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 무력충돌이 발생했을 때 아르메니아 타부시주 전선을 이동하고 있는 아르메니아군 병사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옛 소련 연방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전투가 확산돼 연일 수 십명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가 크게 늘고 있다. 군인은 물론 민간인 사상자까지 나오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와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랜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시작된 양측의 무력충돌이 밤새 이어지는 등 지난 90년대 이후 양국간 가장 격렬한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아르메니아군이 테르테르 지역의 민간인에 포격을 했다"며 비난했다.

아르메니아 당국도 "전투는 밤새 계속됐다"며 "28일 이른 아침부터 작전도 시작했다"고 밝혔다.

양측의 사상자도 수백 명을 넘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제르바이잔 군 관계자는 이날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550명 이상의 아르메니아 군인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아르메니아 측도 아제르바이잔 군 200명 가량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상은 불분명하다.

또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통치하는 아르차흐 공화국은 "28일 저녁에만 26명의 군인이 추가로 전사해 전사자는 84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독일의 도이체벨레는 전체 사망자수가 95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아제르바이잔 9명, 아르메니아 2명 등 민간인 사망자는 11명에 이른다.

◇전투 격화되자 러시아 중재에 나서

이같이 양국간의 충돌이 격화되자 러시아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양국과 터키 외무장관과 잇따라 전화협의를 갖고 전투 중지를 호소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와의 전화회담에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전투가 격화되는 것을 막을 것을 요청했다.

러시아 주동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가입한 아르메니아에는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고 위협이 발생하면 러시아에 군사 원조 의무가 발생한다.

하지만 지난 2018년 민주화시위로 야당지도자인 현 파쉬냔 총리가 집권하면서 러시아보다는 친 서방 경향을 보여와 러시아측이 경계해왔다.

또 러시아 푸틴 정권은 아제르바이잔의 알리예프 정권과도 우호관계를 맺고 있어 조기에 사태를 진정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터키는 전통적인 우방인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아르메니아의 침공을 비난했다.

이에따라 아르메니아에서는 터키의 군사개입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으며 파쉬냔 총리는 "전투 지역 이외에서도 전투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터키의 개입을 견제하기도 했다.

한편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고 있는 터키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하면 자칫 나토와 CSTO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컷뉴스

무력충돌로 파괴되는 아제르바이잔 군용차량.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 소련의 유산…나고르노-카라바흐 화약고

남캅카스(코카서스)의 이웃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30년 가까이 갈등을 빚고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기원은 옛 소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본래 기독교 정교회를 믿는 아르메니아인의 터전이었으나 이슬람 왕조가 이 일대를 차지하면서 튀르크계 무슬림이 대거 유입됐다.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과 튀르크 무슬림이 서로 공존하는 곳이 됐고, 20세기 들어 사회주의 혁명의 물결이 이곳에 밀어닥쳤다.

19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이 속한 캅카스 지역이 소련에 복속된 직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르메니아공화국으로 귀속됐으나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24년 행정 편의와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내 자치지역으로 복속시켰다.

그 결과 약 20%에 불과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이 약 80%에 달하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을 통제하게 됐고, 양측의 갈등은 점점 증폭됐다.

소련이 존속할 당시에는 적정선에서 무마됐으나, 소련이 무너지자마자 70년 가까이 묵은 갈등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는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언했고, 1989년에는 아르메니아가 이 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은 1991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독립공화국'을 선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양측 간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1992년 러시아군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철수하자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에서 전면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비롯해 그 주변의 일부 아제르바이잔 영토까지 점령했다.

양측은 1994년 5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의원 총회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양측에서 약 3만 명이 전사했으며 아르메니아에서 50만명, 아제르바이잔에서 70만명가량의 난민이 발생했다.

큰 희생을 치르고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앙금만 남겼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