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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에 청산리 전투 승리 이끈 박영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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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교관, 북로군정서 학도단장 등 역임

청산리 전투 참전…1930년 연해주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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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 박영희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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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배상은 기자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박영희 선생을 '202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교관, 북로군정서 학도단장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전쟁 영웅들을 배출했다. 그는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여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으로 교관·군사 전략가다.

선생은 충남 부여군 출신으로 1913년 휘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던 중 은사인 이세영을 따라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에 입교, 군사 지식을 배웠으며 졸업과 동시에 교관으로 임명돼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그는 1920년 북로군정서의 사관연성소 학도단장과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일하면서 독립전쟁의 영웅들을 배출하고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다.

북로군정서는 사관연성소 출신으로 이뤄진 만주 독립군 부대 가운데 가장 훈련이 잘된 정예부대다. 이 부대는 1920년 10월21일부터 26일까지 만주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지역에서 일제와 벌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청산리전투는 일본군의 간도 침입을 차단해 만주지방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국내 독립운동도 우회적으로 지켜주면서 조국의 독립에 대한 확신과 독립정신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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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항일 대첩 기념비 (길림성 화룡시 청산리) /보훈처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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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투 후 선생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했다가 자유시참변 이후 만주로 돌아와 1922년 북로군정서 부사령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1923년 9월에 중국 상하이에서 창간된 국한본문 잡지 '배달공론'에 '군사학 강의'를 2차례 기고하는 등 군사지식을 보급하는 일에도 힘썼다.

선생은 이후 신민부에서 보안사령관을 맡아 총사령관인 김좌진 장군을 보좌했다. 이어 성동사관학교 교관으로 신민부의 독립군 간부를 양성해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1926년 김좌진 장군의 밀명으로 항일운동 군자금을 협조받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돼 활동 중 1927년 러시아 첩보기관에 체포됐으며 1930년 연해주 고루지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baeba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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