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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열불이 나도 그냥 참습니다"…'건강한 연구실' 비결은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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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연구실을 찾아] 홍상진 명지대 교수 인터뷰

"의견은 주지만 '왜 그것밖에 안했냐'는 식의 지적 안해"

[편집자주]세상 참 많이 변했죠? 기업들은 '부장님' 호칭을 버리고 '위계적 칸막이'를 없애는 등 수평적 문화 만들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책까지보며 '90년생 배우기'에 열심이죠. 그런데말입니다. 참 변하지 않는 곳이 대학 연구실입니다. 교수님은 여전히 대학원생의 생사여탈권을 쥔 '왕'이죠. 과학 R&D에 연간 20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되는데 '꼰대 교수님'과 '90년생 대학원생'이 공존하는 연구실이 변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요? 이미 현장은 변하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문화에 성과까지 탁월한 '건강한 연구실'을 소개합니다.

(서울=뉴스1) 정윤경 기자,김승준 기자 = "속에서 열불이 나도 그냥 참습니다.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자녀한테도 화를 잘 안냅니다. 채찍질보단 격려를 해서 발을 더 떼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된 홍상진 명지대 교수는 건강한 연구실이 된 비결로 '기다림'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대학원생의 '갑질 수난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갑질논란은 줄기차게 보도되지만 왕처럼 군림하는 지도 교수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다독이고 함께 나아가는 교수들도 있다. 정부가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한 명지대학교 반도체공정진단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홍상진 교수는 "속에서 열불이 나더라도 학생을 기다려 주어야 선생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글 못쓰는 동양인 학생, 화 안내고 지도해준 외국인 교수에게 받은 가르침"

그는 "'건강한 연구실' 수상은 연구실이 받는 만큼 개인적으로 받는 것 보다 100배 정도 기쁘다"며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고 그런 공간에서 배려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이고 영광이다"라고 설명했다.

'기다림'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된 배경에는 자신이 박사과정을 밟을 때의 지도 교수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의 지도 교수는 현재 개리 메이 UC데이비스 총장으로, 홍 교수가 학생일 때 홍 교수의 과제물을 빨간색 펜으로 빼곡하게 첨삭해 돌려주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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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진 명지대 교수.©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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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교수는 "지도교수는 저보다도 훨씬 바빴을 텐데 동양에서 온 말 못하고 글 못 쓰는 학생이 본 글을 보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며 "지도 교수는 속에서 열불이 났을 텐데 어찌 보면 저는 말은 통하는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니 훨씬 행복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가 원하는 답변을 못 들었다고 화를 낸다면 제가 지도 교수에게 받았던 교육을 왜곡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사람인지라 화가 나거나 답답할 때가 있지만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리며 그냥 참는다고 설명한다.

홍 교수는 "간혹 '충분히 설명해줬다'고 생각하는데 학생들이 이해를 못하면 답답할 때가 있긴 하다"며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저는 계속 같은 연구를 해왔던 사람이라 당연한 것들이 학생들에겐 처음이라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 스스로가 '열불이 난다'고 착각하지만 열불이 날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똑똑한 교수만 있는 것 아냐…꾸준히만 해도 성공 가능하단 것 보여주고파"

홍 교수는 "교수가 꼭 똑똑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전 삼수를 해서 명지대를 졸업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학생들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학생들 입장에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지를 해야, 새로운 지식이 쌓이는데 그걸 말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저는 그런 사람이었다"며 "그런 학생들을 위해 똑똑한 교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하는 연구와 발표에 대해 닦달하거나 지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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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전 제1회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된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 반도체공정진단연구소에서 홍상진 교수(왼쪽)가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에게 시설 안내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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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교수는 "랩 미팅은 학생이 궁금해서 연구했던 공부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며 "잘못된 접근이나 올바르지 않은 결론에 대해서 의견은 말해주지만 '왜 그것밖에 안했냐', '언제까지 할거냐' 이런 식으로 지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연구실 문화가 있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그인 만큼, 보람을 느끼는 부분도 역시 학생에게 있다.

그는 보람을 묻는 말에 "학생들하고 대화를 느낄 때 굉장히 뿌듯함을 느낀다"며 "이 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해 설명하고 그 학생이 맞는 대답을 했을 때 느껴지는 교감이 있다"고 말했다.

또 "산학협력을 하면서 기업들과 함께 실험도 많이 하는데 '저 학생 많이 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기쁘다"며 "그런 날은 와인도 한 잔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입학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학생이 졸업후 취업해서 처음으로 '교수님 고맙습니다'하고 인사 올 때 기쁘다"라며 "어제는 공고를 졸업해 전문대에 입학하고, 대학원까지 한단계씩 성장한 학생이 수습 사원을 마치고 인사하러 와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고 말했다.

홍 교수에 대해 학생들은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다양한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점에 대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연구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최정은 학생은 "교수님께서 산학협력으로 기업과 연구실을 매칭해줘서 실제 기업에 연구 내용을 적용하고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매년 워크숍도 가는 등 돈독한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저 역시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김재환 학생 역시 "'건강한 연구실' 수상은 자율적 출퇴근 시간 등 건강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며 "다만 스무명이 넘는 학생들을 관리하시다보니 교수님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v_v@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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