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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의 앙숙… ‘세계의 가스관’ 위에서 무력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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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영토분쟁… 최소 23명 사망·100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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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이 아르메니아군을 향해 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이 장면은 아제르바이잔 국방부가 28일(현지 시각) 배포한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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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코카서스산맥의 남쪽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무력 충돌했다. 옛 소련 영토였다가 1991년 나란히 독립한 두 나라는 30년 가까이 해묵은 영토 갈등을 벌이며 원수지간으로 지내고 있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어 자칫하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27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양국의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해 적어도 23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 부상자가 발생했다.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대국민 연설에서 “전면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모든 국민은 조국을 지킬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르메니아 국방부는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으로 여성과 어린아이 2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도 TV 담화를 통해 “아르메니아군이 먼저 도발해 우리 민간인 일가족 5명이 숨졌다”고 했다. 아제르바이잔은 계엄령을 선포해 성인 남성들을 전쟁에 투입할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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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아제르바이잔 국방부가 아르메니아 측을 향해 군사 공격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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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이 충돌한 ‘나고르노카라바흐’(산악의 검은 정원이라는 뜻)는 4400㎢, 제주도 2.5배 넓이의 땅이다. 이 지역은 인구의 90%가 기독교계인 아르메니아인이지만, 소련 해체 후 전 국민 중 무슬림이 95% 이상인 아제르바이잔 소속으로 독립했다.

아르메니아 입장에선 ‘우리 동포이자 우리 기독교인이 사는 곳’이고, 아제르바이잔 입장에선 ‘기독교계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시도하는 곳’이 된 셈이다. 싸움이 벌어지기 좋은 상황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들은 아르메니아와 합치려고 했다. 이런 움직임에 아제르바이잔이 무력으로 제동을 걸었다. 결국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정면으로 충돌해 1992~1994년 전면전을 벌였다. 3년간 양측에서 3만명이 숨졌다. 2017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르차흐’라는 이름으로 독립국가 출범을 선포했지만 아르메니아 외에 어떤 나라도 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단지 종교와 인종만 부딪치는 지점이 아니다. 아제르바이잔이 카스피해의 석유 및 천연가스를 채굴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가스관이 지나고 있어, 경제적 이해관계까지 첨예하게 맞붙어 있다. 양국은 2016년에도 다툼을 벌여 약 200명이 숨졌고, 작년 7월에도 맞붙어 최소 16명이 사망했다.

외관상으로는 인구 970만명인 아제르바이잔이 310만명의 아르메니아보다 우세하다. 땅덩어리도 아제르바이잔이 3배가량 넓다. 그러나 무게추가 아제르바이잔으로 확 기울지는 않는다. 종교적인 동질성을 이유로 러시아가 오랫동안 아르메니아 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가 아르메니아와 각별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후원해 왔다. 프랑스에는 아르메니아계 인구가 약 50만명에 달하며, 정·관계에 진출한 이들이 여럿이다.

전면전 조짐이 보이자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튀르크족에, 이슬람교 나라인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제르바이잔의 형제들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아르메니아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로부터 100만명 넘는 주민이 학살당해 터키와는 악연이 있다. 아르메니아는 동맹군 확보 차원에서 그간 터키 내에서 독립을 꿈꾸는 쿠르드족과 공동 군사 훈련을 해왔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의 손을 얼른 들어주지 않고 있다. 크렘린궁은 27일 성명을 내고 “러시아는 대규모 충돌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근년에 러시아는 터키와 외교·군사적으로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함수가 복잡하다.

유엔·EU·미국은 휴전을 촉구하며 무력 분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BBC는 “국제사회는 카스피해에서 연결되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송관이 타격을 받아 에너지 가격이 출렁거릴까 봐 예의주시 중”이라며 “전면전으로 번질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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