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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거리의 칼럼] 고향 /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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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광화문 일대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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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고향인 사람들은 서울에서 오래 살았어도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지 않는다. 목가적이고 근원적인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추석마다 사람들은 가고 또 간다. 지금, 사람들의 고향은 고향의 그림자이거나 집단적 환상에 가깝다. 여기나 저기나 타향인데, 금년 코로나 때문에 귀향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래된 타향의 휑한 거리에 남는다.

나는 서울 사대문 안에서 태어나서 늙었는데, 이 물리적 공간이 나의 고향이라고 말하기는 어색하다. 여기는 인간을 향토에 옭아매는 고리가 매우 허약하다. 고향에 대한 나의 의식은 자기분열적이지만, 나는 이 무정한 공간을 나의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울은 정도 600여년 이후에 개국과 망국, 침략과 점령, 파괴와 재건의 영욕을 끌어안고 극한의 역사를 감당해왔다. 한국 근현대사의 온갖 모순과 갈등, 적대하는 욕망과 이익들은 모두 서울에 모여서 부딪히고 있다. 이제 서울의 경관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고, 옛 산수화의 필선의 흔적이 북악산, 인왕산, 남산, 안산의 꼭대기 쪽에 겨우 남아서 사라져가는 서울의 잔영처럼 보인다.

옛 서울의 기본구도는 경복궁의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고, 인의예지를 4대문에 맡긴다. 이 구도 안에는 인간다운 가치 위에 권력과 제도를 건설하려는 꿈의 파편이 남아 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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