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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김정은 손바닥서 놀아났다" 盧정보맨들이 본 '총살전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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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 '핫라인' 있는데…안보라인 무능력하단 뜻"

"北, 다각도로 효용 극대화…남한 정세 흔들어"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할 때까지 6시간 동안 정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고위 정보당국자들이 질타를 쏟아냈다.

중앙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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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당시 정보 당국에 있었던 복수의 고위 관계자들은 27일 중앙일보에 "정부는 북측이 응답을 하든 안 하든 청와대, 국정원, 판문점 연락사무소 등 핫라인을 총동원해 생환 노력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文만 보이고 국민은 안 보이나"



특히 전직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전후해 남북 정상 간 친서와 북측 통일전선부 명의의 전통문이 오간 것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비판했다.

익명을 원한 전직 고위 정보당국자 A씨는 "문재인 정부가 무계획적으로 대응한 게 여실히 드러난다"며 "실종되면 핫라인이 가동되든 안 되든 북측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달라. 구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 "그래야 국민에게 일종의 면피가 되고, 남북대화를 여는 계기도 되는 게 아닌가. 그만큼 현재 안보라인이 무능력하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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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또 다른 전직 고위 정보당국자 B씨는 "친서만으로도 사건 이전에 핫라인이 살아있었다는 정황은 명백하다"며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친서를 제3국 접촉으로 받긴 힘들었을 것이다. 친서 교환은 국정원 팩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북측이 서훈 실장에 대한 냉랭한 감정이 남아 있어서 청와대가 아닌 국정원을 통해 친서가 오갔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최근 남북관계가 안 좋아도 이런 핫라인을 통해 반드시 상황을 확인하고 조처를 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튿날 아침 '늑장보고'가 이뤄진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B씨는 "새벽에 청와대에서 안보실장 주재로 관계장관회의까지 열었다는 건 그만큼 사안을 중요하게 봤다는 것 아닌가"라면서 "대통령을 깨워서라도 보고했어야 한다. 안보실은 문재인 대통령만 보이고 국민은 안 보이느냐"고 말했다.



◇"北의 치밀한 계획에 놀아났다"



전직 고위 정보당국자들은 이번 사건을 둘러싼 북측의 대응을 놓고는 "북한이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한 정황이 엿보인다"며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고위 정보당국자 A씨는 "북한은 다각도로 이번 사건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고자 했을 것"이라면서 "남북관계가 어려우면 국민도 못 지킨다는 메시지가 하나고, 문재인 정권엔 우리가 가만히 안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줬다"고 풀이했다.

이어 "그러면서도 사후에 전통문을 보내 궁지에 몰린 문재인 대통령의 어려운 입장을 완화해줬다. 이는 북한이 '우리 태도에 따라 남한 정세를 바꿀 수 있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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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남북 정상간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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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왜 하필 통전부 명의로 전통문을 보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면서 "아마도 향후 박지원 국정원장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힘을 실어주기 위해 카운터파트인 통전부를 활용했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전직 당국자 C씨는 북한군이 사살 전 6시간 동안 대기한 것과 관련해 "현장 보고를 받은 북한 상부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여러 가지를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사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소각 명령을 내렸을 것"이라며 "그래야 코로나19 방역이란 정당화 명분을 내세우고 시신 훼손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군의 비상식적 해명…정치적 판단 의심"



군 안팎에선 군의 6시간 무대응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전직 군 정보 관계자 D씨는 "합참이 사살과 시신 훼손을 목격한 이튿날까지도 해군과 해경은 엉뚱한 곳에서 수색하고 있었다"며 "해군과 정보 공유가 안 됐다는 얘기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게 바로 해군 초계정(고속정)의 임무인데, 2~3대만 주변에 보냈어도 확인했을 것"이라며 "반드시 이 부분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인 사살 당시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군의 해명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와 관련, 한 군 관계자는 "당시 우리 군은 미군이 각종 정보자산을 통해 파악한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 배가 2척이나 떠 있었는데 위치를 몰랐을 리가 있겠느냐"며 "바깥에서 보면 군이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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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된 사건이 발생한지 5일 뒤인 지난 27일 이른 아침 북측 등산곶이 보이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해병대원들이 해상 정찰을 하고 있다. 군 안팎에선 "사망 전에 군이 첩보를 공유해 해군 초계정이 접근하는 등 빨리 대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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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방부는 지난 24일 뒤늦게 관련 사실을 공개하면서 "볼 수 없는 원거리 해역에서 일어난 일을 다양한 첩보를 종합 판단해 재구성한 것"이라며 "북한 해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군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북한이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울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도 논란이다. 전직 고위 정보당국자 B씨는 "북한이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민간인도 아니고 군인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밝혔다. 이어 "군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응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나사가 빠진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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