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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사법농단 속 출범한 '김명수 코트' 3년… 여전히 엇갈리는 공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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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자체조사 불구, 사법농단 사태 미해결
"검찰 과잉수사 용인했다" 내부 불만은 여전
1ㆍ2심 소신판결, 대법 소수의견 증가엔 호평
한국일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지난해 2월11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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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취임 3주년을 맞이하며 6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고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대법정이 시민들한테 점거되는 사태마저 발생하는 등 커다란 혼란의 시기에 출범한 ‘김명수 코트(courtㆍ법원)’에 대해 중간점검을 해 볼 시점인 것이다. 사법부를 향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맡은 탓인지, 김 대법원장의 공과(功過)에 대해선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제왕적 대법원장’을 내려놓고 경청을 택한 사법부 수장의 모습에 긍정적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만, 좌우 양쪽 진영에서 모두 “결정이 느리다”라거나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다.

“불가피한 선택” vs “법원을 검찰에 바쳤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김 대법원장에 대한 법원 안팎의 평가는 지금도 ‘사법농단’에서부터 출발한다. 일단 법원 내의 목소리는 극과 극이다. 한편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거나 “(대법원장이) 나서지 않고 일선 판사들에게 맡기는 것 자체가 김명수표 개혁의 핵심”이라는 옹호론이 있다. 그러나 “법원을 검찰에 갖다 바쳤다”는 원망과 비난도 식지 않았다. 세 차례에 걸친 자체 조사를 했음에도 사법부가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결국 광범위한 검찰 수사를 용인해 줬다는 이유다. 일선 법원의 A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은 책임을 지고 비판을 받는 자리인데, 의견수렴이라는 명분으로 시간만 끌었다”며 “대법원 전체가 검찰의 과잉 수사를 받는 동안 아무 존재감도 나타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거북이 걸음’을 걷고 있는 사법농단 사건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법원의 개혁 작업도 미완일 수밖에 없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실제로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ㆍ현직 판사들에게 줄줄이 무죄가 선고되고, 연루 법관들에 대한 징계도 솜방망이에 그치면서 김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은 진보 진영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금기가 된 ‘재판 관여’… 판결 다양성도 실현


다만 사법농단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누구도 일선 재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원칙이 정립됐다는 건 확실한 변화다. 비(非)법관화가 진행 중인 법원행정처는 물론, 법원장이나 수석판사, 선배 판사의 법리적 조언조차 이제는 ‘금기’가 됐다는 얘기다. 고법부장 승진이 사라지고 대등재판부가 도입되면서, 재판장 입맛에 맞도록 배석 판사들이 특정 결론의 판결문을 ‘납품’하는 관행도 사라지고 있다.

1ㆍ2심 재판부의 ‘소신 판결’도 늘었다. 현 정부 들어 본격화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선고는 결국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새로운 판례로 이어졌다. 육체노동자의 정년을 65세로 상향한 대법원 판례 변경도 하급심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밖에 주거침입죄로 기소된 불륜 상대방에게 무죄를 선고하거나,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비장애인 안마사에게 무죄를 내린 하급심 판결도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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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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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의 ‘13대 0’(전원일치) 판결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33.6%(39건)였던 전원일치 판결 비율은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11.1%(7건)로 대폭 감소했다. 대법관 모두가 최종 결론에선 일치했더라도, 다수의견과는 논리 구성을 다르게 한 ‘별개의견’이 제시된 경우도 14.3%(9건)나 됐다.

이러한 추세는 궁극적으로 ‘판결의 다양성’이라는 가치 실현으로 이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B 부장판사는 “예전 같았으면 (선배들한테서 ‘이상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법한 판결이 많아졌고, 대법관들의 소수의견도 다양해졌다”며 “이처럼 판결에 고민이 담겨야, 소수가 다수가 되는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웰빙 판사’ 양산… 법리토론 상실 비판도


그러나 변화를 보는 시선이 곱기만 한 건 아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는 최근 ‘워라밸 판사’ ‘웰빙 판사’ 등의 신조어가 생겼다. 법조계 원로나 선배 판사들이 “요즘 판사들은 일을 게을리한다”며 꾸짖는 말이다. 사법부가 탈관료화ㆍ탈중심화되면서 ‘판사의 독립’이 확고해지긴 했지만, 그만큼 ‘실력 없는’ 판사들도 늘어났다는 게 고참들의 불만이다. 사건 처리율도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이른바 ‘튀는 판결’을 둘러싸고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C 부장판사는 “기존 법리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판결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색다른 판결이 많아지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소수의견이 증가하는 게 좋게만 바라볼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사법부는 일관된 법 테두리를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전원합의체의 전원일치 판결 감소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의견이 서로 대립할 땐 치열한 토론과 설득, 조율을 거쳐 ‘합의’를 봐야 하는데, 이를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2016~2017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전원일치 판결 비율이 57%였다는 사실이 귀감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내리는 게 최고법원의 역할”이라며 “소수의견의 증가는 단순히 소통 부족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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