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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천사 가로막는 ‘세금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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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억원 기부한 백범 자손에게 돌아온 건 27억 세금 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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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인 고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2006년부터 10여 년간 미국 하버드대 등 해외 대학에 42억 원을 기부했다. 김구 선생의 항일 투쟁 역사를 알리는 ‘김구 포럼’과 한국학 강좌 개설 등 교육 목적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의 후손들에게 돌아온 것은 27억 원의 ‘세금 폭탄’이었다. 국세청은 2018년 10월 상속세 9억 원, 증여세 18억 원을 부과했다. 해외 대학은 상속·증여세를 감면받을 수 있는 공익재단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1년 5개월여의 심사 끝에 올 6월 조세심판원은 ‘증여세 18억 원 중 10억 원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2016년 이후 증여분(23억 원)에 대해선 국세청이 증여세를 납부할 사람에게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할 통지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 후손들은 2016년 이전 기부한 19억 원에 대한 세금 부과도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조세 회피 의도가 없는 공익적 기부에 대한 과도한 세금이 기부 문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금을 깎아서라도 부자들의 기부를 유도하는 해외 사례에도 역행한다. 특히 정부의 재정 지출만으로는 급증하는 복지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민간 기부 활성화를 위한 입법과 세제 개편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기부연금’ 도입, 10년째 제자리걸음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기부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세청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중은 2013년 0.83%(명목 GDP 기준)에서 2018년 0.73%로 뒷걸음질쳤다. 미국(2.08%)의 3분의 1 수준이다.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을 기준으로 한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 2015년 29.9%, 지난해는 25.6%로 하락 추세다. 캐나다(82%), 영국(67%) 등 기부가 활성화된 국가들과 격차가 크다.

이는 기부자 중심의 법과 제도를 얼마나 갖췄느냐의 문제다. 해외에서는 유산 기부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세제 혜택으로 이를 적극 장려한다. 영국이 2011년 도입한 ‘레거시10(Legacy10)’ 제도가 대표적이다. 유산의 10%를 기부하면 40%인 상속세를 10% 깎아주는 제도다. 당시 영국 자산 순위 6위였던 버진그룹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도 약 30억 파운드(약 4조4646억 원)의 재산 중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면 당장 세수는 줄어들 수 있어도 거액의 유산이 사회에 환원돼 얻게 되는 이득이 더 크다. 한국은 전체 기부금 중 유산 기부 비중이 0.5% 수준에 불과하다. 영국은 33%에 이른다. 하지만 세제 지원이 뒷받침되면 유산 기부를 하겠다는 국민도 적지 않다.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51.6%가 “재산 10% 기부 시 상속세 10%를 감면해준다면 유산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유산을 기부하면서 연금처럼 노후 소득을 보장받는 방법도 있다. 미국에서 1843년 도입된 ‘기부연금’이다. 현금이나 부동산을 사회복지단체 등에 기부하면 그 금액의 최대 50%까지를 본인이나 가족이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특히 가계 자산의 75%가 부동산에 집중된 한국인에게 기부연금은 노후 대비를 도울 수 있는 제도다. 연금 수급액이 월 150만 원 이상인 고령층이 9.6%에 불과한 현실에서 주택 등 자산을 기부해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19, 20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은 논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폐기됐다.

주식·부동산 기부해도 활용에 제약

전문가들은 기부 활성화를 가로막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기부 활성화를 위한 세법상 지원제도 검토’ 보고서에서 “기부 활성화에 역행하는 세법 개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기부 규모 및 공익법인도 감소하고 있다”며 “공익사업이 축소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 기부 관련 규제다. 현행법은 공익법인이 기업의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기부 받으면 최대 50%의 증여세를 물린다. 비과세 기준은 일반 공익법인은 5%, 성실 공익법인은 5∼20%다. 50%까지 비과세인 일본이나 관련 규제가 없는 영국, 호주, 독일 등보다 주식 기부 규정이 훨씬 엄격하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공익법인이 기부 받은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하거나 수익사업에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부한 유산을 기부자의 뜻에 맞게 쓰려면 유류분(遺留分)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유류분 제도는 상속인들이 사망자의 재산 중 일부를 본인 몫으로 주장할 수 있다. 기부자의 뜻과 달리 상속인들이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할 경우 갈등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유언의 자유를 우선시하고, 직계비속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아 이런 갈등의 소지가 적다. 전문가들은 유류분 제도가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 경제적 기반이 없는 어린 상속인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됐기 때문에 시대 상황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해외에서는 선의의 기부자가 과도한 세금을 물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둔 곳도 많다. 독일의 ‘형평면제처분제’도 그중 하나다. 이는 법에 맞게 세금이 부과됐더라도 조세형평에 어긋난 경우라면 세액이 확정되거나 징수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면제하거나 경감해주는 제도다. 올 4월 국회입법조사처는 ‘공익 기부 과세에 대한 입법과제’ 보고서에서 “조세 회피 목적이 없는 선의의 기부에 상속·증여세가 부과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공익기부를 활성화하려면 불합리한 과세에서 기부자를 구제할 수 있는 형평면제처분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부활성화 강조했지만 법안 통과는 ‘0’

현 정부는 출범 당시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기부문화 활성화’를 제시했다. 2018년 국무총리실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기부 투명성 제고 및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상속·증여세법과 공익법인법 개정을 국회와 적극 논의하고, 기부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그러나 국민 체감도는 높지 않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기부 관련 법안은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은 “기부 문화를 활성화시키려면 선의의 기부자에 대한 세금 폭탄을 막을 장치가 절실하다”며 “증여세 감면 등을 통해 고액 기부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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