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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스페셜리포트] (상) 웹툰 작가, 몸을 갈아 웃음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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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10.8 시간 작업...과로에 우울증ㆍ공황장애

K웹툰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 문화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독창적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웹툰 작가들은 K웹툰의 눈부신 성장에 가려진 채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투데이가 웹툰 작가의 어두운 현실을 짚어본다.


#.웹툰 작가 A 씨는 월요일까지 원고를 PD(콘텐츠 발굴부터 제작·유통 등 작품 프로듀싱을 관리하는 기획자)에게 넘겨야 한다. 며칠 밤을 새워 다음 화 파일을 넘겼다. 진이 쭉 빠졌지만, 마음 놓고 쉴 수가 없다. 글·그림을 모두 맡고 있어 다음 화 마감 기한을 맞추려면 곧바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화요일, 다음 편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콘티 3분의 1 정도를 마무리해야 하지만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다. 실시간 연재 중, 한숨 돌릴 틈 없이 작업해도 하루 계획한 작업량을 마무리한 적은 드물다. 수요일, 전날 밀린 콘티를 마무리하고 컷에 들어갈 배경들을 정비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마감이 나흘밖에 안 남았다. 한 컷을 그리는 데 보통 1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편당 할당된 분량은 60~70컷. 남은 나흘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을 작업에 들여야 한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것은 일상. 이번 주도 내내 신티크(웹툰 작가들이 작업을 하는 기기)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펜을 움직였다. 일주일 중 하루도 맘 편히 쉴 수 없어 휴식 시간을 여섯 시간, 반나절로 쪼개 놓고 쉬어야 했다. 연재하는 내내 쉬어본 기억이 없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억지로 침대 위에 누워도 내일 소화해야 할 작업량이 떠올랐다.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찾은 병원에선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원을 돌파했다. 2013년 1500억 원에서 7배 가까이 성장한 것.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월간 이용자는 6700만 명에 달하고 월 거래액만 800억 원에 육박한다. 카카오페이지 역시 가입자 3500만 명, 올해 연간 거래액은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창의력 넘치는 웹툰 작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이투데이가 만난 웹툰 작가들은 모두 작업량이 살인적인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간 연재, 60~70컷, 컬러’라는 업계 표준을 작가 개인이 소화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 웹툰 작가 실태조사’는 웹툰 작가들의 하루 평균 10.8시간, 일주일 중 평균 5.7일을 작업에 쓴다고 발표했다. 2018년 실태 조사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이투데이

작가들은 해당 표준을 맞추지 않으면 플랫폼에 연재 자체를 시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작가 B 씨는 “계약 단계에서 60~70컷보다 낮게 제안하면 난색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에이전시의 작품 검수 단계나 공모전에서 60컷 이하 분량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도 연재를 시작할 땐 업계 표준에 맞춰 계약하길 종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 C 씨는 “댓글에서 ‘이 만화는 스크롤이 많이 내려가는데’라면서 독자들이 비교하기 시작하니 그런 댓글들을 플랫폼에서 수렴하기 시작했다”며 “유료 플랫폼은 그래도 60~70컷 수준인데, 네이버 등 포털에는 100컷 넘는 만화들도 수두룩하다”라고 설명했다.

당장 수입이 필요한 작가들은 작업량이 과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 주간 연재 부담을 덜기 위해 3~5주 분량의 세이브 원고를 준비해두고 시작하지만, 금세 동이 나고 만다. 세이브 원고를 계속 축적하기 위해서는 일주일마다 새로운 화를 지연 없이 제작해야 하는데, 계획 작업량을 하루라도 맞추지 못하면 일주일이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 일주일을 쏟아붓는 작가들의 건강에는 늘 적신호가 켜져 있다. 이투데이가 만난 작가들은 모두 손목·허리에 만성질환을 갖고 있었다. 이외에도 식도염, 가벼운 우울증, 수면장애,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심각한 경우 면역력 저하로 하혈한 경우도 있었다.

A 씨는 “첫 작품을 할 때 6개월 밤낮이 바뀌었는데, 그 후 1년 동안 수면장애를 앓았다”며 “제때 잠을 못 자니 면역력이 떨어져 순식간에 건강이 망가지더라”고 말했다.

플랫폼과 웹툰 에이전시 관계자들은 “휴재를 원하는 작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웹툰과 다음웹툰의 경우 작가들의 건강검진과 정기 휴재를 제공하고 있다.

김희경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지회장은 “사실상 병 주고 약 주기”라며 “근본적으로 작가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투데이/박소은 수습 기자(gogume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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