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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외출 간섭 부모님과 싸웠다" 사라진 일상 덮친 코로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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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외출할 때마다 ‘코로나에 어디 나가냐’ 간섭하시더라고요. 괜히 부모님과 대판 싸웠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회사로 출퇴근할 때 빼고는 '집콕'하는 직장인 박모(26)씨. 박씨는 주말 외출할 때마다 부모님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 8월 간만에 정말 원했던 뮤지컬 공연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그런데 다른 회차 공연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화를 내더라"며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모님 입장도 이해가 가서 울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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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투는 모습.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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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19 때문에 사라진 평범한 일상에 대한 반작용일까.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앵그리(분노)’가 번지고 있다. 취업준비생 조모(30)씨는 “동생이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 시기에 국내 여행을 다녀 ‘너 혼자 딴 세상사냐’고 말다툼을 했다”며 “다 같이 힘 모아도 모자를 시기에 개인 행동하는 동생이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싶어 화가 많이 났다”고 털어놨다.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정모(29)씨도 “밀집 장소에 가면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남자친구와 데이트 장소를 정하다 다툰 적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지난달 25~28일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19 장기화로 우울감을 넘어 분노와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전국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코로나 19 뉴스에 어떤 감정을 크게 느끼나’란 질문에 대해 ▶불안 47.5% ▶분노 25.3% ▶공포 15.2%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초 응답과 비교해 분노는 2.2배, 공포는 2.81배 늘었다.

일상이 제약받은 데 따른 부작용으로 파악됐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코로나 19 장기화로 국민 대부분이 일상의 자유로움을 제약받자 정서적으로 지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실질적인 '심리방역'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개인 갈등→사회 갈등 악화



사회 갈등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코로나 확산 책임을 떠넘기는 세대 갈등이 눈에 띈다. 방역수칙을 어긴 50~60대 남성을 ‘오륙남’으로 지칭하며 조롱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에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남성이 휴대전화 전원을 끈 뒤 고속철도를 타고 대구로 이동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등 비슷한 사례가 잇따라 발생한 것이 계기다. 지난달 27일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안에서 50대 남성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승객의 뺨을 슬리퍼로 때린 사건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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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인근을 지나는 열차에서 마스크를 쓰지않은 50대 남성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승객을 폭행하고 있다. [SBS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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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클럽 집단감염 발생 당시엔 20·30대가 비판받았다. 코로나 재확산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클럽·주점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코로나 진단검사에 응하지 않아서다. 20·30대는 코로나에 걸려도 무증상이거나 가볍게 앓는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오자 일부 고령층은 이들을 ‘코로나 불효자’라고 꼬집기도 했다.



“위험 수위…'심리 방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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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코로나 앵그리 현상이 사회 전반적 분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감정은 전염성을 가진다. 이 중에서도 분노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지금과 같은 현상이 지속하면 사회 전체를 분노로 뒤덮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며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감염시키는 코로나 19가 심리적 방역을 무너트리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심리 방역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 앵그리 현상이 심화하면 ‘묻지 마 폭행’과 같은 사례가 늘 수 있다”며 “현재 서울에만 국가 트라우마센터가 있어 권역별 심리적 방역체계가 부족하다. 정부에서 재난관리센터 컨트롤센터 등을 세워 심리 방역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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