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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환자 집서 돌보려 혼인한 간병인…법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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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환자 안 보내려 ‘허위 혼인신고’한 혐의 재판에

1심 “가족 돌봄 못 받던 환자 본인이 결정…위장결혼 아냐”

[경향신문]

생의 마지막 단계에 환자를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간병을 지속하기 위해 환자와 허위의 혼인신고를 한 혐의를 받던 간병인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2단독 이원 부장판사는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 등 혐의로 기소된 간병인 문모씨(60)에게 지난 9일 무죄를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검찰은 문씨가 환자였던 A씨에게 ‘며느리가 당신을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 나와 결혼하면 내가 보호자가 돼 요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위장결혼을 제안하고 허위의 혼인신고를 했다며 문씨를 재판에 넘겼다. 여성인 문씨는 지난 2018년 3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남성인 A씨의 집에서 간병인으로 근무했고, A씨는 혼인신고 후 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죄는 공무원으로 하여금 실재하지 않는 사실을 기록하게 한 때 성립한다. 형법 제228조 제1항은 “공무원에 대하여 진실에 반하는 허위신고를 하여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에 그 증명하는 사항에 관해 실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부실의 사실을 기재 또는 기록하게 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A씨와 문씨의 혼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 즉 ‘위장결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혼인이 꼭 성적 결합, 동거생활, 생계 또는 자녀의 출산을 포함한 정신적·육체적 결합과 같은 ‘전형적 요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혼인관계의 구체적 모습은 혼인관계의 당사자가 계속적·자율적으로 형성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우에 따라서는 성적 결합, 동거생활, 생계 또는 자녀의 출산 중 일부가 결여된 혼인생활도 있을 수 있으며 사회적 계층 이동, 경제적 상황 개선, 해외이주 등의 목적이 부수되어 있을 수 있다”며 “그것이 본래의 혼인 의사와 모순돼 본래의 혼인 의사 내지 목적을 부인하게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가장혼인 내지 위장혼인이라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자식 등 가족들의 직접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문씨를 제외한 간병인들도 A씨 곁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문씨가 A씨의 간병을 그만둘 경우 A씨는 요양병원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있었다. A씨는 요양병원으로 보내지지 않고 지금까지 생활하던 집에서 거주하면서 여생을 마칠 때까지 문씨의 간병과 보살핌을 그대로 받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문씨는 혼인신고 후 법적인 ‘보호자’로서 A씨를 자택에서 보살폈다. 혼인신고 5일 후 A씨는 호흡곤란 등으로 병원 응급실로 후송돼 사망했다.

재판부는 “혼인신고 당시 A씨가 혼인 합의를 할 의사능력이 결여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요양원으로 보내질 것을 우려한 A씨가 피고인과 혼인신고를 결심하고 피고인에게 이를 요청했으며 피고인이 그 요청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혼인신고 이후 A씨가 호흡곤란 등으로 병원 응급실로 후송돼 사망하게 될 때까지 길지 않았지만, 그 기간 A씨와 문씨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된 점을 보면 혼인신고가 참다운 부부관계가 아닌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방편에 불과했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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