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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피대 없어 공장 못 돌려"…북한 '퍼펙트 스톰'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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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지역 단둥 르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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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보고서를 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태풍이라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북한의 무역, 산업, 재정, 시장이 일시에 붕괴되거나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퍼펙트 스톰'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퍼펙트 스톰'은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 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는 의미의 기상 용어지만, 경제적으로는 복수의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직면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초대형 경제 위기를 일컫습니다.

● "김정은, '쌀값 올리면 역적으로 치라' 지시"

북한의 '퍼펙트 스톰'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9월 21일 중국 단둥에서 만난 북한 주민 김 모 씨에게서 북한의 실상을 짐작할 만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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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에서 만난 북한 주민 김 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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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북한의 코로나 상황을 묻는 질문에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망설이더니 "얼마 전 장군님(김정은)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습니다. "쌀값을 올리면 역적으로 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되고(봉쇄되고) 장사꾼들이 쌀값을 올리니까, 굶어 죽을 사람이 많으니까 지시가 내려왔다"고 부연했습니다. "조선(북한)에서는 '너 역적이다, 반역이다'라고 하면 어디론가 추방되거나 끌려간다"고도 했습니다. 소위 '장군님의 지시' 이후 "장마당(시장) 책임자들은 돌아다니면서 수시로 쌀값을 검열하고 쌀값을 올리면 재까닥 신고하고, 신고하면 보안서에서 역시 재까닥 나와 조사한다"고 전했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집중호우와 세 차례 태풍이 북한을 강타한 것도 쌀값 불안의 한 요인이라고 김 씨는 덧붙였습니다.

● 북한 주민도 "자력갱생"…산 일궈 '다람쥐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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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에서 바라본 북한 모습. 중장비에 '자력갱생'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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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에서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본 북한의 구호는 '자력갱생'이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자력갱생'이라는 말은 북한 당국만 쓰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주민도 '자력갱생'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더 이상 북한 당국만 쳐다보지 않고, 주민들이 스스로 제 살길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 김 씨는 "수령님(김일성) 잃고 나서 '고난의 행군' 기간에는 아침에 자고 나면 아들이 굶어 죽어 있는 집이 많았다"면서 "이후 주민들이 자력갱생에 나섰다"고 전했습니다. 직장인들도 봄에 농사를 지어 가을에 먹을 식량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산에 나무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직장인들이 모두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산을 일궈서 농사를 짓는 이른바 '다람쥐 농사'를 하는가 하면, 당국에서 떼어 준 밭에다 농사를 짓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 수확량의 30%는 당국에 바쳐야 한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김 씨는 "지금 조선(북한)에서는 비상 양식을 푸는 한이 있어도 자력갱생으로 버틴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비상용 1호 양식은 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 "피대 없어 공장 못 돌려…죽은 기업소 많아"

대북 제제와 코로나 봉쇄에 따른 여파는 식량뿐 아니라 북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북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김 씨는 "생산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국수를 만드는 기업소(공장·사업체)의 피대(바퀴에 걸어 동력을 전달하는 벨트)가 끊어졌는데, 중국에서 교체용 피대를 못 들여오기 때문에 기업소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 군수공장에서 피대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군수 자재로 이용하지, 일반 기업소에는 공급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또, 북한은 중국산 짐 싣는 차량 '동풍호'를 많이 들여왔는데 부품이 없어 고장나도 못 고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죽은 기업소가 많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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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 시내 문 닫은 북한 식당. 문을 연 북한 식당에서도 '코로나19 때문에 물건이 오지 않는다'며 북한산 대동강맥주를 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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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말을 외부에 섣불리 얘기했다가는 잡혀가기 십상이라고 김 씨는 전했습니다. 중국 단둥에도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직원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정보를 수집하고 '유언비어' 유포자를 잡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일반인처럼 위장하고 다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거리에서 '북한의 코로나 상황이 어떻네', '북한 경제가 어떻네' 얘기했다가는 북한으로 끌려간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북한의 태풍과 수해 피해가 보기보다 심각한 것 같다"며 "올가을 추수기가 북한 민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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