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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와 '분석'에 허비한 50시간... 북한 만행 지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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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경기 이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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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47)씨를 북한이 발견한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A씨를 북한군이 무참히 살해한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는 문재인 대통령 명의 메시지가 나온 24일 오후 5시까지. 50시간 동안 청와대와 군의 대응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남한 군당국이 A씨 신원을 파악한 때부터 북한 총격으로 A씨가 숨진 5시간 동안, 군의 구출 조치는 사실상 전무했다. A씨 생존을 위한 골든 타임을 날린 것이다. '우리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관계부처가 인지하고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되기까지는 10시간이 걸렸다. 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정부가 A씨 사망을 인지한 지 32시간 만에야 나왔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 수위도 '매우 유감, 용납 불가, 책임 있는 조치 요망' 정도에 그쳤다.

5시간: '최악 상황' 고려 없이 軍은 손 놓고 있었다


북한 수상사업소 선박이 황해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A씨와 접촉한 사실을 군이 알아챈 건 22일 오후 4시 40분. 북한군이 상부 지시를 받아 A씨에게 총격을 가한 오후 9시 40분까지 A씨를 구하기 위한 군의 노력은 거의 없었다.

“단순 실종인 줄 알았던 A씨가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뒤였고, 남북 간 통신 수단이 끊겨 있어서 북한군과 접선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군이 내놓은 해명의 요지. 그러나 군이 유엔이나 민간상선채널 등으로 접촉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5일 "정말 절박했다면 국제통용수기와 같은 절차를 활용해서라도 국민의 안위를 살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은 또 "북한이 관례에 따라 A씨를 죽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국경선 1㎞ 이내 접근하는 이들을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는 건 정부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북한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무참히 폭파하는 등 지난 6월 이후 '특이 행동'을 보였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군이 대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의 첩보 자산이 드러날까 염려해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는"는 군 측 해명도 '첩보가 끊어지는 게 국민 생명보다 우선인가'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진 않아 보인다.

10시간: 첩보 신뢰성 따지다 '국민 피살' 늑장 보고


‘북한군이 A씨에게 총격을 가한 후 시신을 불태웠다’는 첩보를 정부가 입수한 건 22일 오후 10시 30분. 문 대통령은 10시간 뒤인 다음날 오전 8시 30분에야 대면 보고를 받았다.

"첩보의 신뢰도를 확인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청와대의 해명. 이런 설명도 더해졌다. '북한과 관련한 첩보가 하루에만 수십 개씩 접수된다. 그 중 상당수는 가짜로 판명된다. 모든 첩보를 첩보 상태로 보고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청와대의 설명에 일견 동의한다. 그러나 북한군이 우리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담은 '긴급 사안'이라면, 정확한 사실을 대통령이 '늦게' 파악하는 것보다, 정확도가 떨어질지언정 '일찍' 파악하는 게 조속한 의사결정 및 대응을 위해 낫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구나 첩보 입수 후 30분 만에 관계장관회의가 소집되는 등 기민한 대처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만 보고를 늦게 받았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회의 개최 사실을 문 대통령이 안 것도 대면 보고에서였다.

32시간: 피격 인지 불구, '사실관계 파악' 지시한 文


"매우 유감이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이 나온 건 24일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A씨 사망 사실 인지 후 32시간 뒤였다. 이렇게 늦어진 것도 정부가 '사실관계 파악'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전날 오전 '밤샘 분석’을 통해 관계부처가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보고받았음에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라. 북에도 확인하라"고 했다. 관련 사실의 대국민 공개를 사실상 보류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훼손을 지나치게 우려해 과도하게 신중을 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구나 정부 발표보다 언론 보도를 통해 A씨 피살 사실이 알려지며, 정부의 신뢰도가 깎인 측면도 있다.

문 대통령이 단 한차례의 NSC를 주재하지 않은 것도 도마에 오른다. 사안을 지나치게 키우지 않기 위해 물러나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최종 의사결정자인 문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했다면 대응도 전반적으로 빨라졌을 것"이라고 봤다.

32시간 만에 내놓은 메시지도 수위가 높지는 않았다. '만행' '규탄' 등 NSC 회의나 군 당국을 통해 나왔던 강도 높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는 문 대통령 입이 아닌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입을 통해 전해졌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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