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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정일과 다른 김정은의 사과…정상국가 통치 스타일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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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 공무원 A 씨에 대한 총격과 시신 훼손에 대해 미안하다는 입장을 통지문을 통해 밝혔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사건 발생 이후 이번과 같이 신속하고 분명하게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북한 통일전선부가 청와대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왔다며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 커녕 우리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시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이번과 같이 사과한 경우가 있냐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1972년 김일성 주석이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사건과 관련해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면담 시 구두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단히 미안하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고, 2002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의원 신분으로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사과의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이번과 같이 미안하다는 표현을 한 전통문에서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 신속하게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의 답변대로 김 위원장의 이러한 반응은 이례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이전 지도자들과 다르게 집권 이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거나 내부 여론을 달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있을 때 사과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한 바 있다.

실제 그는 2014년 5월 평양에서 23층 신축 아파트가 붕괴했을 때 "유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표하고 수도 시민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으며 2017년 신년사에서는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자책 속에서 지난해를 보냈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김 위원장의 이러한 태도는 북한이 자신들이 잘못 대처하여 사과해야 할 사안이 있을 때 경직된 대응을 보였던 기존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다. 이 장관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과 2010년 천안함 사건,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등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유감 표명이 있었냐는 윤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명확한 표현은 없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이 이같은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이전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때와 달리 소위 '일반 국가', '정상 국가'로 나아가려는 김 위원장의 통치 방식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의 올해 당 회의체 관련 활동은 15회로, 전체 공개 활동의 36%에 달해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지난 2016년 36년 만에 당 대회를 개최하는 등 집권 이후부터 기존의 통치 절차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김정일 위원장이 군을 앞세운 통치를 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과 세 번의 정상회담을 거쳤고 양측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친서를 교환하는 등 남북 간 일정한 관계를 이어왔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점도 김 위원장의 신속한 사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김 위원장의 사과에 대해 "북으로서는 이 상황을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대응하는 과정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19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6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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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인영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가 담긴 전통문으로 북한에 대한 책임 추궁 및 진상 규명 등이 모두 끝난 것이냐는 지성호 국민의 힘 의원의 질문에 "이 자체로 끝났다고 말씀드린 적 없다"며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북한은 해당 전통문에서 남한 공무원 A 씨의 월북 경위에 대해 남한 군 당국과 다른 주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관계장관 대책회의 과정에서 논의하겠다. 앞으로 규명해 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공무원 A 씨의 시신과 관련해 남북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신을 찾을 계획이 있냐는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이 장관은 "좀 더 구체적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과 같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원한다면 남북이 공동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결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박진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대해 이 장관은 "관계장관 대책회의가 열리면 (남북이) 서로 다른 (사실관계가 있는) 부분들을 어떻게 확인할지 논의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 역시 남북 간 실무 차원에서 공동으로 서해 NLL 경계근무 규정 및 9.19 군사 합의에 대해 검토하는 회담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장은 "북한은 해상 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 준칙에 따라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9.19 합의와 어떻게 부딪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9.19 군사 합의와 관련해 세세한 항목과 관련한 논란 이전에 이 사안은 전체적으로 군사합의를 이뤘던 합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들에 대해 저희가 대책을 세워서 재발 여지를 불식시키는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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