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슬리퍼 주인이 누군데, 동생이 월북했다고 단언하나" 형의 반박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방부 발표 비판... "과오 숨기려 '자진월북' 조작"
군 NLL남측 상황 설명없이 북측 상황은 생중계
한국일보

북측에 피격된 해양수산부 직원의 형인 이모(55)씨가 25일 경기 안산 자신의 사무실에서 동생이 표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슬리퍼가 동생 것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동생이 월북했다고 단정합니까.”

북측에 피격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A(47)씨의 형 이래진(55)씨는 생중계 하듯 동생이 월북했다고 단정한 국방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25일 경기 안산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씨는 “국방부가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급하게 발표했다가 뒤늦게 수습하려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방부 발표를 보면 동생이 최소 20~34시간 이상 NLL(북방한계선) 남측에서 표류한 것으로 보이는데, 남측 표류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 안 하면서 북측에서 표류하던 2~4시간에 대한 설명은 장황했다”며 “더욱이 북한군이 동생을 사살했을 때 내가 바로 8마일 남쪽에서 동생을 찾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나한테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북측에 피격된 해수부 직원의 공무원증. 이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씨는 국방부가 발표한 동생의 ‘자진 월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방부는 앞서 공무원 A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밝히면서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신발(슬리퍼)을 배 위에 나란히 벗어둔 점 △당시 조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점 △평소 채무 등으로 고통을 호소했던 점 등 4가지 이유를 들었다.

이씨는 “구명조끼를 착용했다고 했는데 해경도 해수부도 아닌 국방부가 왜 갑자기 22일 오후 6시 30분쯤 무궁화 10호(동생이 승선했던 배)의 구명조끼 숫자를 파악했느냐”며 “자진 월북을 끼워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배 승선자는 내부든 갑판 위든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하는데 월북하려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설명하면 그 배 선원들은 관련법을 위반한 것이냐"고도 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도 탈북자가 어떤 계급인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데 자진 월북하려던 동생이 왜 공무원증을 놓고 갔겠느냐”며 “월북의 필수조건이 바로 공무원증인데 국방부 등은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북측에 피격된 해수부 직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슬리퍼. 이씨는 슬리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이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였다고 했는데 내가 봤을 땐 로프 밑에 깔리듯 놓여 있었고, 누군가 옮겨 놓은 것 같다”며 “문제는 그 신발이 동생의 것인지 아닌지, 배에 승선해 있던 직원들도 모른다고 했는데 무슨 근거로 동생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이씨가 확보한 파란색 슬리퍼는 둘둘 말린 로프 밑에 놓여 있었다.

또 “동생이 조류의 흐름을 잘 안다고 했는데 소연평도 남쪽에서 수차례 꽈배기 형태로 표류한 흔적이 나오는데 월북하려 한 사람 맞느냐”며 “사람이 물속에 빠지면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뭐라도 잡으려 하지 않겠냐. 동생이 살기 위해 부유물을 잡았을 수도 있는데 그게 월북의 수단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가 설명한 위치와 동생이 표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가 다르다고도 했다.

그가 보여준 실종자 표류 예측을 보면 소연평도 남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꽈배기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후 NLL 이남에서 표류하던 동생이 결국 거의 실신 상태에서 바뀐 조류에 의해 북측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동생은 항해사, 팀장으로 해당 배에 승선한 지 나흘밖에 안 된 상태”라며 “배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점검에 나섰다가 실족했을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다”고 했다.

이씨는 동생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는 “내가 과거에 동생에게 돈을 빌린 적 있다. 동생이 지인들한테 돈을 빌려 준 것도 일부 있는데 금전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오고 있다”며 “국방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자진 월북으로 덮으려고 동생의 가정사까지 다 흘린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은 물론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언론에 동생의 사생활을 얘기한 적 없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북측의 피격으로 숨진 해수부 직원이 표류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도. 이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바다에 떠 있어 통신이 안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나와 통화했으며, 지난 19일 마지막 통화에서도 ‘형, 뭐 하냐’, ‘배 적응은 잘 되느냐’는 얘기를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며 “동생이 월북을 시도 했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이씨는 “국방부는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할 줄 몰랐을 것”이라며 “뒷수습 하려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NLL 남쪽에서 표류하던 동생의 행적과 시간 등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