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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화웨이 겨냥한 미국의 수출통제, 美기업에 오히려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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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혜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미·중 간 기술패권 전쟁이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로 현실화 됐다. 하지만 수세에 몰린 중국보다 미국의 다급함이 더 안쓰러울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대략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 선진 기술을 이끌던 국가다. 그런데 이제 겨우 경제 개발 40년 차인 중국에게 4차 산업의 핵심 기반시설 기술인 5G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생긴 것이다.

미국은 우선 미봉책으로 5G 통신장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수출통제' 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어느 정도 효과를 볼지는 의문이다. 또한 미·중 간 기술전쟁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한국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관련 업계도 자구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러한 영향은 당분간 계속 될 전망이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화웨이를 겨냥한 미국의 수출통제, 자국 기업에 오히려 독

미국은 지난 5월 15일 수출통제 제재리스트(entity list)에 중국 데이터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huawei, 华为) 및 화웨이 관련 해외 소재 자회사 114개 기업을 포함시켰다. 수출통제 제재리스트는 미국의 「수출관리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에 근거한 것으로 기업이나 개인이 미국의 국가안보, 대외정책에 위해(危害)가 된다고 판단될 경우 등재된다.

제재리스트에 등재된 기업 및 개인은 미국기업과의 거래에서 반드시 미국 정부의 사전허가(license)가 필요하다. 이는 명목상 허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수출금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적극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가 정상적 영업활동을 유지하자 미국은 9월 17일 다시 법률을 개정하여 더욱 강력한 제재안을 내보였다. 150개가 넘는 화웨이 관련 기업을 제재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미국 국내기업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으로까지 제재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는 미국산 기술, 소프트웨어, 장비에 의존하여 만든 모든 5G 관련 외국제품에 대해 화웨이로의 수출·재수출·이전을 사실상 금지한 것으로, 삼성이나 LG가 화웨이에 반도체와 같은 5G 관련 제품을 수출하고자 한다면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강력한 제재는 화웨이뿐만 아니라 주요 동맹국은 물론 자국의 산업경쟁력 측면에서도 결코 긍정적이라 할 수 없다.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화웨이에 제품 및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 중 25%가 미국이다. 더욱이 미국 반도체 회사인 스카이웍스나 퀄컴 등은 수익의 절반 이상을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오히려 자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격이 될 수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은 질주하는 중국을 막을 수 있을까?

자국 기업이 다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중국의 질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인지가 의문이다. 미국 수출통제의 주요 목적은 중국의 5G 기술의 발전 속도를 막아 미국이 주도권을 잡을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겠다는 데 있다.

그런데 미국의 주요 4차 산업 기업은 아마존, 구글 등 통신장비에 기반을 둔 플랫폼 기업이 주를 이룬다. 화웨이를 막으면 이를 대체할 만한 국내기업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미국의 현실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미 중국이 주도하는 5G 이상의 기술을 단시간에 개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국내 기업의 피해를 감내하면서 까지 급하게나마 중국을 막아서고 있지만 미국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한편, 화웨이는 미국의 공세적 압박에 꼼짝없이 고립된 상황이다. 궈핑(郭平) 화웨이 회장은 9월 23일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화웨이 커넥트 2020'(Huawei Connect 2020) 기조강연에서 "화웨이는 현재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이제는 생존이 목표다"고 언급하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화웨이가 지금의 고난을 극복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화웨이의 사망 선고가 곧 중국의 5G 기술 선도에 대한 사망선고는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반사이익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미국의 수출통제정책의 맹점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상황과는 달리 중국은 화웨이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신할 제2의, 제3의 통신장비 및 기기 업체들이 화웨이 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일정정도의 기술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수출통제가 화웨이를 표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다른 통신장비 기업들의 성장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미국의 이러한 압박이 오히려 중국의 경쟁력을 더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판매금지 조치로 미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48%에서 3~5년 사이에 18%까지 하락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40%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화웨이 역시 미국의 제재 속에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중국정부도 2021년부터 시작하는 '제14차 5개년 경제개발규획(2021~2025)'기간 동안 약 10조 위안(약 1700조 원)을 투입하여 '반도체굴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는 기술기반 산업이기 때문에 투자를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기술이 축적되는데 일정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계획하고 있지만, 미국의 공세 속에 중국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는 오리무중이다.

미국 대선 이후에 상황이 좀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차세대 산업의 주도권을 잃고 기술패권으로서의 세계 지휘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싸움의 승패는 과연 중국이 방어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한국이 되어야

강대국 싸움에 언제나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숙명이다. 한국 기업은 사드(THAAD), 일본의 전략 물자 수출규제 등 일련의 외부충격을 경험하면서 이제 어느 정도 대응하는 기술이 생긴 듯하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 제1, 2의 수출시장이 바로 미국과 중국이라 미국의 수출규제를 무시할 수 없고, 그렇다고 중국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과 하이닉스, 그리고 뒤이어 LG까지 비교적 적시에 미국 상무부에 화웨이로의 반도체 공급 허가신청을 냈다. 비록 승인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더라도 중국에게 반도체 공급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시장점유율에 있어서도 우리 기업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5G 통신장비 분야에서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던 화웨이가 뒤쳐지게 되면 분명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화웨이를 대신하여 캐나다의 5G 통신장비 시장을 차지하는데 성공한 삼성전자의 선례가 보도된 바 있다. 이처럼 현실에 닥친 어려움이 한편으로는 우리의 기술경쟁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윤성혜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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