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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백화점도 의무휴업? 이러니 시장 상인도 ”과잉“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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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유통규제]

22일 정부입법 지원센터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12건에 달한다. 대부분 기존 규제를 강화하는 게 개정안들의 골자다. 개정안 중 일부는 면세점과 백화점까지 의무휴업 대상으로 포함해 논란이 되고 있다. 유통기업이나 그 직원들 입장에선 '(전통시장을 키운다는) 정책적 효과도 없이 고통만 받는 상황'이란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매출로도 확인된다.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를 시작한 2010년 21조4000억원이던 전통시장 매출은 2018년 23조9000억원으로 2조5000억원이 느는데 그쳤다. 그 기간 정부가 전통시장 지원에 쓴 누적예산(2조483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규제의 효과가 아니라 규제의 명분을 소비한다(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을 만나 하소연을 해보면 '유통 규제 효과 없는 거 우리도 안다, 하지만 무조건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유통 관련 규제 법안이 계속해서 발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통업 관련 규제는 일단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약자’이고, 유통기업은 이들을 괴롭히는 '악당'이다. 정치인 입장에선 약자를 지켜주는 정의의 사도가 된다. 물론 규제로 인한 효과는 불분명하다. 최근 논란이 된 지역화폐 도입 효과 논쟁과도 닮아있다. 여기에는 '소상공인을 돕겠다는데, 경제적 효과 운운하지 말라'는 정서가 깔려있다. 초선·재선은 물론 다선까지 뛰어든 여당 의원 사이의 선명성 경쟁도 이를 촉발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국 소상공인 636만명…정치적 영향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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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전통시장에서 상인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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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상인회 등의 정치적 영향력도 간단치 않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저마다 전통시장으로 달려가는 이유다. 일단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은 '표'가 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국 1437개 전통시장에서 일하는 35만9049명(2018년 말 기준)에 달한다. 시장 상인뿐 아니라 소상공인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636만5000명(2017년 기준)에 이른다. 국민 여덟명당 한 명이 소상공인이다.

익명을 원한 서울시 자치구의 한 부구청장은 “한 표가 아쉬운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같은 선출직 공무원으로선 시장 상인회나 상인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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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통시장 및 상인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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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회 출신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 예로 21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이동주(48)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한상총련) 부회장을 지난 자영업자 출신이다. 그는 10년 넘게 치킨 가게와 분식집 등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대기업(상호출자제한집단)이 운영 중인 복합몰과 백화점ㆍ아웃렛ㆍ면세점ㆍ전문점 등의 영업 제한을 두는 유통 관련 규제들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소상공인 관련 단체들도 유통 관련 규제에 우호적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최근 유통업 규제 강화 움직임과 관련 "시장 상인들은 생존을 위해 이제서야 장사에 온라인을 접목하는 걸 배우고 있다"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상인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라고 말했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도 유통업 관련 규제 법안은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타율이 높은' 이슈다. ‘강자 대 약자’ 구도가 뚜렷하니 야당 등도 이를 강하게 반대하기 어렵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종인 대표부터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는 판이니,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좋은 취지'에 대놓고 반대하기 힘든 형편"이라고 전했다.



과잉 규제, 형평성 논란은 부담



하지만,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규제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은 정치권에도 부담스럽다. 가구 전문점으로 분류된 이케아와 농협하나로마트, 식자재마트 등은 유통규제 중 하나인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때문에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면세점과 백화점까지 규제 대상에 넣은 일부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전통시장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과잉 규제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와 관련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대결'을 전제로 한 유통업 규제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제로섬(zero sum)' 관계로만 볼 게 아니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업체들이 온라인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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