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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Deep & Wide] 신기술 없이 “3년내 반값 전기차” 테슬라 시총 23조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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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데이’ 행사날 주가 급락

원가 56% 줄인 배터리 자체 생산

2만5000달러짜리 전기차 선언

“해왔던 약속 되풀이” 시장은 싸늘

“두걸음 앞선 미래차 비전” 시각도

중앙일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운데)가 22일 배터리 데이에서 생산비용 절감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행사 직전 테슬라 주가는 전날보다 5.6% 내렸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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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서 ‘배터리 데이’ 행사를 열었다. 행사 직전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테슬라 주가는 전날보다 5.6% 내렸다. 이후 시간외 거래에서도 추가로 6% 넘게 떨어졌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하루 만에 200억 달러(약 23조원)가 날아간 셈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투자자들이 듣고 싶어했던 ‘획기적인 신기술’을 테슬라가 내놓지 않아서다. 테슬라가 이날 공개한 배터리 기술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LG화학·삼성SDI와 일본 파나소닉, 중국 CATL 등 국내·외 주요 배터리 업체들이 개발 중인 기술이었다.

테슬라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이날 행사에서 새로운 배터리와 공정 혁신을 통해 원가를 56%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초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초고효율 배터리(㎏당 500Wh)는 아니었다. 대신 ‘반값 배터리’를 선언한 셈이다. 원가 절감은 전기차 보급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항목별로는 ▶새로운 배터리 규격으로 14% ▶제조 공정 개선으로 18% ▶전극 개선으로 17% ▶배터리 통합기술로 7%의 원가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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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주가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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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또 “3년 안에 2만5000달러(약 2900만원)짜리 전기차를 내놓겠다”며 “이건 회사를 시작할 때부터 꿈꿔온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테슬라의 전기차(모델3) 가격은 5000만원대다. 전기차가 미래 이동수단의 주류가 되기 위해선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비싸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만일 머스크의 계획이 실현된다면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내연기관 자동차와 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3년 안에 이 정도 가격의 전기차를 선보이겠다는 완성차 업체는 테슬라뿐이다.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ID.3(약 5800만원)를 비롯해 주요 완성차 업체의 신형 전기차 가격은 대부분 5000만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블룸버그통신은 “지금까지 테슬라가 해왔던 약속을 되풀이한 수준”이라며 “당장 이루기 어려운 목표만 늘어놨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저렴한 전기차가 나온다고 한다. 단 3년 후에”라는 냉소적인 제목을 달았다. 투자 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테슬라가 아마존·애플 등과 비교해 고평가됐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테슬라는 (전기차라는) 신규 업종에서 어마어마한 미래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테슬라가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는 하겠지만 맹목적 지지자들이 신봉하는 정도의 성공은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터리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테슬라의 발표가 미래 차 경쟁에서 ‘두 걸음’ 앞서가는 비전을 내놨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테슬라, 아마존·애플 비해 고평가”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될 것” 갈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테슬라) 주가가 내려갔지만 신기한 기술이 없었던 것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배터리 전문가인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최초의 2차전지인 납축전지에서 리튬이온까지 발전하는 데 90여 년이 걸렸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세상을 바꿀 배터리 기술을 테슬라에 기대한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선 교수는 “테슬라가 장기적으로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한국 배터리 업체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하는 등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테슬라는 ‘셀투팩(CTP)’이라 불리는 기술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전기차용 배터리는 배터리셀에 각종 회로나 배선을 연결해야 한다. CTP를 적용하면 공간을 늘리고 배선과 회로를 없앨 수 있다. 자동차 구조에 배터리를 통합하는 셈이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아니지만 이런 기술을 적용할 능력을 갖춘 회사는 아직 없다.

머스크의 반값 배터리 선언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배터리 가격이 아무리 싸져도 상품화가 중요한데 56%까지 가격을 낮춘다는 건 엄청난 발전”이라며 “기술적 혁신이라기보다는 원가 경쟁력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타링크(전 지구 저궤도 위성통신망)까지 더하면 테슬라는 자동차와 모빌리티(이동수단), 통신을 아우르는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터리 데이 전까지만 해도 2020년은 테슬라에 ‘최고의 해’가 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았다. 테슬라 주가는 올해 초보다 네 배가량 뛴 상태다. 증시 전문가들이 적정한 주가 수준을 가늠할 때 사용하는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은 1000배가 넘는다. 일반적인 주식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테슬라의 주가 움직임은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투자자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일부 국내 투자자는 배터리 데이 전까지만 해도 테슬라의 주가가 내려가는 것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여겼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추가로 사들인 테슬라 주식은 6억1202만 달러어치였다.

이동현·전수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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