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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회, 잇단 스포츠 비리에도 IOC 방패 삼아 개혁 회피 [심층기획 - 정부, 체육회·KOC 분리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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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안 왜 나왔나

쇼트트랙 코치 성폭행 사건이 발단

혁신위서 개혁안 중 하나로 제시돼

체육회 거센 반발에 잠시 가라앉아

최숙현 선수 사망으로 다시 쟁점화

문체부·체육회 명분 경쟁

박양우 장관 “책임·공공성 확보 필요”

“공론화 초기단계… 의견 적극적 수렴”

체육회 “정부가 스포츠 속박하는 것”

이기흥 회장 “IOC 위원 포기”로 맞서

세계일보

대한체육회가 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를 추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 송파구 대한체육회 입구 모습. 허정호 선임기자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문제를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발단은 2019년 1월 초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조재범 코치의 성폭행 사건이다. 체육계 악습 철폐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원회는 개혁안 중 하나로 대한체육회와 KOC의 분리를 제시했다.

체육계의 강력한 반대 속에 두 기관의 분리 문제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했다. 그러나 지난 7월 트라이애슬론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폭력 사건과 비리 등이 터질 때마다 대한체육회에 과감한 내부 개혁을 요구했지만, 체육회가 KOC를 보호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양측의 대립은 KOC 대표 자격으로 IOC 위원이 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재선 문제와 연결되고 IOC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복잡한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KOC-체육회 분리에서 통합까지

이런 갈등이 왜 빚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면 대한체육회와 KOC의 분리와 통합의 역사적 과정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한체육회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 조선체육회로 출범했고, KOC는 해방 이후 한국의 IOC 가입을 계기로 1947년 체육회 산하 단체로 출발했다. 하지만 1964년 외교적 전문성과 재정능력을 이유로 기업가 중심 인사들이 주축이 된 KOC가 독자적으로 분리돼 나오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두 단체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아 각종 국제대회에서 주도권 다툼이 빈번했던 탓이다. 결국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돈줄을 쥔 KOC 중심의 행정에 불만을 품은 체육인들이 현장에서 반발하는 등 갈등이 폭발했다. 이는 분노한 손기정 선수단장이 삭발하고 조기 귀국하는 사태로 번졌다.

방콕 아시안게임 기간 중 유치했던 1970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권을 2년 만에 반납한 것도 두 단체의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KOC가 산정한 비용으로는 대회 개최가 어렵다는 체육회의 주장이 힘을 얻은 결과였다. 이렇게 반목이 심해지자 당시 정권이 나서 1968년 KOC를 대한체육회 산하 특별위원회로 편성해 갈등을 봉합했다. 이후 대한체육회장이 KOC 위원장을 겸임하는 체제가 됐지만 2004년에도 KOC 독립 목소리가 나오는 등 논쟁은 계속됐다. 결국 박용성 회장 때인 2009년 체육회와 KOC가 전격 통합하며 논란이 일단락된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합쳐 통합 체육회 출범을 앞두고 있던 2015년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다시 두 단체의 분리가 담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해 불씨를 되살렸다. 김종 차관이 이끌던 당시 문체부도 이에 동의하며 체육회를 압박했지만 결국 분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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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란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분리를 내용으로 한 개혁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문체부는 왜 다시 분리하자고 하나

정권이 바뀌었어도 문체부는 여전히 KOC의 독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 16일 열린 시도체육회 민선 회장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KOC를 분리해 국제스포츠 측면에서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4000억원에 이르는 공공자금이 투입되는 대한체육회는 그에 걸맞은 책임성과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라고 이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두 기관의 분리 문제가 공론화 과정과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KOC는 독립해 국제 스포츠 외교에 전념하고, 대한체육회는 좀 더 공공성이 강조된 기구로 거듭나는 것이 정부가 구상하는 모델이다. 유병채 문체부 체육국장은 “공론화와 입법과정에서 달라지겠지만 KOC는 IOC 헌장에 충실한 기관의 역할을 하고, 분리 이후 대한체육회는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형태로 법적 지위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구상을 하는 밑바탕에는 체육계 폭력 사건과 비리 등이 터질 때마다 대한체육회에 과감한 내부 개혁을 요구했지만, 체육회가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라는 IOC의 방침을 방패 삼아 이를 회피하고 있다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다.

일단 정부는 이번 분리 문제가 공론화 초기 단계라면서 향후 지속해서 체육계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유 국장도 “어차피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안이라 향후 국회 내 논의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문체부 장관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분리 추진 의견을 밝힌 만큼 정책 추진에 본격적으로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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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노동조합원들이 지난 2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체육회와 KOC 분리 움직임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뉴시스


◆대한체육회는 왜 분리에 반발하나

체육계는 문체부의 이 같은 입장에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달 31일 대한체육회 대의원총회는 정부의 체육회-KOC 분리 추진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체육계 내부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강제로 체육회에서 KOC의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독선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들은 KOC 분리 움직임이 기존 시스템을 흔들어 엘리트 체육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 체육계는 대한체육회가 KOC와 분리돼 IOC와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정부의 간섭에 시달릴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체육회 관계자는 “이미 예산과 관련해 문체부와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고 체육회 사업도 문체부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간섭은 스포츠를 정부에 속박하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다. 체육회 노동조합 역시 성명을 통해 같은 목소리를 냈다.

특히 대한체육회는 일부 정치세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체육계 폭력 사건을 빌미로 체육계를 사유화하려는 검은 배경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는 대한체육회 정관 개정 문제로 연결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4월 이기흥 회장이 IOC 위원직을 유지하면서 체육회장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수 있도록 ‘선거 90일 전 사퇴 대신 직무정지’를 뼈대로 한 회장 선거 정관 개정을 결의하고 문체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아직도 정관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정치권의 외압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휘둘렸던 문체부가 체육회의 개혁을 주도할 만큼 공정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

이에 더해 독립될 KOC의 권한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대목이다. KOC가 가질 수 있는 국가대표 육성·선발 권한과 국제대회 파견 권한 가운데 문체부는 예산의 대부분이 쓰이는 충북 진천선수촌 통제권을 쥔 국가대표 육성·선발 권한을 체육회에 그대로 남겨두겠다는 복안이다. 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KOC를 예산과 인력이 적은 껍데기만 있는 조직으로 만들고 스포츠 전반의 실질적인 권한을 쥔 체육회를 정부가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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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가 대한체육회에 보낸 서한. 대한체육회 제공


◆팽팽한 평행선… 결국은 정당성과 명분 경쟁

이런 가운데 IOC는 지난 9일 제임스 매클리오드 올림픽 솔리더리티 앤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국장 명의로 이기흥 회장에게 “KOC를 분리하려는 외부 압력을 매우 우려한다.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분리보다 단결과 안정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문체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각국 NOC를 보호해야 할 IOC 국장의 대응이지만 대한체육회의 분리 반대 입장에 큰 힘을 실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이기흥 회장도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정관 개정안을 승인하지 않으면 IOC 위원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 맞서는 발언을 했다. 한국 스포츠 외교의 중요한 자리인 IOC 위원직이 상실될 경우 정부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이런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잇따른 체육계 폭력사건 탓에 한 젊은 선수가 귀한 생명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체육계 최고 수장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더니 자신의 권리 주장에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회장이 체육회장에서는 물러나고 KOC 위원장직만 유지해 IOC 위원으로 활약하는 것이 책임 있는 모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더해 문체부는 KOC 분리가 ‘엘리트 체육 죽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엘리트 체육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측 관계자는 “KOC 분리를 통해 앞으로도 엘리트 체육 예산과 행정지원을 지속해서 확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문체부는 이를 위해 부처 내 체육 관련 업무를 분리해 ‘체육청’으로 분리 독립하는 장기적인 청사진까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체육계 내부 개혁이다. 그런데 일부 체육회 기득권층이 IOC를 앞세워 이를 막고 자신들의 권한 유지를 위해 체육청 독립과 같은 청사진 실현을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측의 입장은 팽팽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해외사례를 봐도 독일과 프랑스처럼 체육회와 NOC가 통합된 경우도 있고 미국과 영국, 일본처럼 분리된 형태도 있어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문체부와 체육회 중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명분을 쌓아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는가가 대한체육회와 KOC 관계 정립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송용준·서필웅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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