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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생안망] 근로계약서, 꼭 써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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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윤지 디자이너 yunji2@kukinews.com

<편집자 주> 입버릇처럼 ‘이생망’을 외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2030세대. 그러나 사람의 일생을 하루로 환산하면 30세는 고작 오전 8시30분. 점심도 먹기 전에 하루를 망하게 둘 수 없다. 이번 생이 망할 것 같은 순간 꺼내 볼 치트키를 쿠키뉴스 2030 기자들이 모아봤다.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취직보다 힘든 게 ‘좋은’ 회사 찾기입니다. 유유히 세뱃돈을 챙기는 부모님 콘셉트로 ‘진짜 가족’을 추구하며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회사가 있습니다. ‘석식 제공’을 내세우며 매일 오후 11시까지 야근을 강요하는 ‘이중인격’ 회사도 있죠. 근무일이 아닌 휴일이란 걸 잊고 일을 시키는 기억상실 ‘빌런’도 종종 출몰합니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당신을 보호할 유일한 아이템은 ‘근로계약서’입니다. 아이템 연성부터 갈 길이 멉니다. 차근차근 스테이지를 격파해볼까요.


◇ STAGE1. 근로계약서 제안하기


두근두근. 첫 일자리를 얻게 된 당신! 하지만 첫 출근날까지 근로계약서는 구경도 하기 힘듭니다. “근로계약서는 언제 작성하나요? 제 월급 면접에서 들은 대로 주시는 거 맞나요?”라고 묻고 싶지만 첫날부터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고민 끝에 “근…”이란 말을 꺼내자마자 사업주는 “아니, 그거 꼭 작성해야 하나?”라고 반문합니다. 첫 번째 보스전이 시작됐습니다.

YES → “근로계약서는 저뿐만 아니라 사업주의 권리도 보장하는 일입니다” 사업주 설득에 성공했습니다. STAGE2로 넘어갑니다.

NO → “우리 사이에 그런 게 필요하냐” “계약서 안 쓰면 돈을 더 주겠다” 사업주의 막무가내에 두 손 들어버린 당신. 3개월 뒤, 사업주는 ‘가족 같은 사이’임을 강조하며 “형편이 어려우니 이번 달은 월급에서 10만원을 빼겠다”고 선언합니다.


◇ STAGE2. 표준근로계약서 아닌데 괜찮을까?


사업주가 가져온 근로계약서를 보니 ‘표준근로계약서’가 아닙니다. 표준근로계약서와 달리 몇 가지가 빠져있습니다. 근로계약 기간과 소정근로시간, 근무일·휴일은 적혀 있지만 업무 내용과 근무 장소는 없습니다. 사업주에게 이야기해봅니다. “업무 내용과 근무 장소를 추가할 수 있을까요?” 사업주는 심드렁하게 답합니다. “그거 인터넷에서 뽑아온 거야. 다른 곳도 다 그거 쓴대”

YES →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한 표준근로계약서 내용에 맞춰 적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에 업무 내용 등도 좀 더 확실히 파악하겠습니다” 사업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업무 내용과 근무 장소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STAGE3으로 넘어갑니다.

NO → “다음 주부터는 다른 구에 있는 사업장으로 출근해” 근무 장소를 적지 못한 당신. 사업주는 당신이 원래 지원한 곳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출근을 명합니다. 통근 시간이 도보 10분에서 지하철·버스 환승 포함 2시간30분으로 늘어났습니다.


◇ STAGE3. 잊지 말자, 사회보험. 다시 보자, 임금 내용.


두 번째 보스전을 마친 당신. 남은 항목을 천천히 살펴봅니다. 임금 관련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월급과 상여금 여부, 기타급여, 임금 지급일 등입니다. 사업주는 뿌듯한 듯 “내가 돈 문제는 확실해”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그런데 임금이 구인공고·면접 때 들었던 내용과 다릅니다. 연차 유급 및 사회보험적용 여부, 근로계약서 교부, 이외 사항은 근로기준법에 따른다는 항목도 빠져있습니다. 다시 한번 사업주에게 묻습니다. “월급이 들었던 것과 다르네요. 고용보험이랑 산재보험, 건강보험 등은 어떻게 처리되나요?” 뜨끔한 사업주는 당신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더니 “아니 그걸 얘기했던 대로 다 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라고 호소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고비입니다.

YES → “구두계약도 계약입니다.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최후통첩에 사업주는 알겠다며 월급을 수정합니다. 고용보험·산재보험은 필수, 건강보험·국민연금은 월 60시간 이상 근로자라면 사업주와 상의 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일자리를 얻게 된 당신, 이제 근로계약서의 무게만큼 열심히 일할 시간입니다.

NO → “아니, 내가 어떻게 챙겨줬는데 이럴 수가 있어?” 사회보험을 빼달라며 편법을 요구하던 사업주는 그 뒤에도 끊임없이 세금 등과 관련한 ‘불편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참다 못한 당신은 근로계약 관련 문제들을 모아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습니다. 마음고생으로 만신창이가 된 당신, STAGE1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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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윤지 디자이너


◇ BONUS STAGE. 일일 아르바이트인데 근로계약서를?


근로계약서에 대해서는 이제 ‘만렙’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시급 1만원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제안합니다. ‘하루 일하는데 굳이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해야 하나? 돈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사업장에 가보니 아무 말 없이 전단지만 안겨줍니다. 갈등에 빠진 당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YES → “근로계약서 쓰고 시작할게요” 당신을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업주. 그러나 거절하면 불법이기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합니다. “아, 뭐 필요하면 그러시던가” 계약 내용대로 일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퇴근했습니다.

NO → “이거 원래 남들은 1시간 걸려요. 그러니까 1만원 밖에 못 줘”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한 당신. 3시간 동안 전단을 배포했지만 사업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근로계약서가 없어 항변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 도움=신정웅 알바노조 위원장,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변호사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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